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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집 성추행과 제주 해군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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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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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에 청와대도 입장을 밝힐 수 있다. 계층·이익집단 간 찬반 의견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사회적 갈등은 국회와 청와대의 현명한 개입으로 정치적 해결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이 봉합되고 사회는 통합된다. 하지만 정치적 해결을 위해선 공정하고 단일한 잣대가 필수적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식이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해군기지 반대 시위로 처벌된 사람들에 대해 재판이 모두 확정되는 대로 사면·복권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대법원이 빠르게 절차를 진행해주면 종료가 되는 때에 맞춰 사면·복권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빨리 재판을 끝내라고 사법부를 압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한국당은 “재판도 안 끝난 사건에 사면·복권을 논하는 건 재판을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기만하는 행동”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합법적 절차를 밟아 결정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이 과정을 교통정리 했던 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간담회에서 말한 것은 지나쳤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강정마을 주민과 시위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34억여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했다. 불법시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시위와 주민 갈등으로 10년 이상 고통받은 강정마을에 이제 화해와 치유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달랐다. 지난해 11월 한 남성이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그의 아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면서 논란이 됐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미투 사건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33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서명하자 청와대가 답변했다.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12일 “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삼권분립 원칙 때문에 청와대가 언급할 수 없는데 제주 해군기지 사건은 법원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왜 대통령이 사면·복권을 거론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재판을 서둘러달라는 ‘독촉’을 했을까. 둘 중 하나는 잘못됐다. 서로 배치되는 잣대를 청와대는 휘둘렀다. 이러니 청와대만 독주하는 ‘청와대 정부’ 소리를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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