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갈대 속 악어 잡으며 원주민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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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땟목에서 보낸 첫날밤은 뜻하지 않은 복병 열대모기로 모두 잠을 설쳐야 했다.
얼굴·손등 가리지 않고 한번 피를 빨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아 맹수보다 더 무서운 곤충으로 탐험기간 내내 대원들을 괴롭혔다.
이곳에는 또 아마존강을 관리하는 페루육군의 검문초소가 있어 지나는 모든 배를 통제하고 있었다.
뗏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약간의 선물이 모든 절차를 생략하게 해줬다.
「급행료」로 인기품목은 전자시계·카셋등이며 특히 양주 조니워커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얘기였다.
본격항해가 시작됐다. 열대지역이면서도 강 한가운데 떠 있으면 바람이 시원해 더위는 한결 덜했다. 강변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인디오마을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와 손을 흔들기도 했고 웃통을 벗은 인디오여인이 아이를 옆에 두고 강물에 빨래하는 모습도 보였다.
육로가 정글로 막혀 있어 아마존은 유일한 교통로인 동시에 모든 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이틀간 꼬박 3백㎞를 떠내려가 첫기착지인 코치키나스에 도착한 것은 오전6시였다. 반바지·티셔츠대신 정글복으로 갈아입은 뒤 악어사냥에 나섰다. 늪지에서 쓸 커누 3대를 빌고 현지 인디오 1명을 안내원으로 채용했다.
사냥은 1㎞쯤 정글로 들어간 라빈다호수에서 밤10시부터 시작됐다. 달빛이 적은 어두운 밤이라야 악어들이 많이 나와 논다는 현지인의 설명. 무기는 2m정도의 창으로 악어 등을 뚫을 수 있게 끝이 매우 날카로왔다.

<현지인 1명을 채용>
늪지대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악어가 우글거리는 곳에 커누를 띄우고 어둠 속을 헤쳐나가는 무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20여분만에 「후앙」의 배에서 『잡았다』는 함성이 먼저 터졌다.
갈대속에 숨어있던 악어가 「후앙」이 던진 창에 맞아 떠오른 것.
인디오들은 어둠속에서도 악어를 눈빛만으로 찾아내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2번째 함성이 터진 것은 다시 30여분 뒤였고 먼동이 틀 무렵까지 7마리를 잡아 첫사냥치고는 상당한 전과였다.
대원들은 악어가죽을 기념으로 삼는다고 벗겨냈으나 열대의 태양에 곧 부패되기 시작했고 살코기는 아무래도 입에 안 맞아 안내원들만 포식했다.
다음 행선지는 l백㎞ 떨어진 산파블로의 음성 나환자촌.
땟목대신 모터보트를 타고 출발했다. 이미 아마존안으로 3백㎞나 깊숙이 들어와 있어 다른 배들은 거의 볼 수가 없고 간간이 그물던지는 어부들만 한가롭게 눈에 띄었다.
5시간여의 항해끝에 도착한 산파블로는 주민3천명정도의 마을로 음료수·과자·생필품 등을 파는 가게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코카콜라가 없는 가게가 없어 오지까지 파고든 상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가격은1병에 25인티로 우리 돈으로는 1백원정도.
목적지인 산호세 수용원의 책임자인 「에르네시트·두베」신부(65)는 캐나다인으로 30년전 아마존에 온 뒤 선교와 구휼에 일생을 바쳐 「밀림의 성자」로 불러지고 있었다.
17년전 나무집으로 시작된 수용원은 환자가 2백명으로 늘었고 부속병원도 갖추어져 있었다.
발이 없어지고 얼굴이 뭉개지는 등 비참한 모습이었으나 환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으며 우리들의 방문을 무척 반가와 했다. 쌀·설탕·소금·과자 등을 건네주자 『메르시 보쿠』를 연발했고 코레아에서 왔다고 하자 몇몇은 안다고 손뼉을 쳤다.

<오지에 파고든 상혼>
아마존강변의 인디오마을은 집들이 모두 2층으로 1층은 기둥만 세워둔 채 돼지·닭 등을 기르고 생활은 2층에서 했는데 농사·목축 등은 「코르테스」정복이후 이주한 성직자들로부터 배운 것이란 얘기였다.
특히 제수이트파 수도사들의 활동이 활발해 브라질과 파라과이국경에 위치한 이과수폭포 주변의 과라니족 이야기는 「롤랑·조페」감독의 영화 『미션』으로 극화돼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다음날 우리는 인디오 전통마을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출발지에서 수소문해 알아놓았던 마을이 이주해 버려 차질이 생겼다.
담이 커진 젋은 대원들의 주장으로 좀더 오지로 들어가기로 하고 안내원을 통해 정한 곳이 우르코 미라노 지방의 야과스부족 마을. 지류를 타고 모터보트로도 꼬박 이틀거리인 2백60㎞를 다시 거슬러 오른 뒤 걸어서 1시간, 배로 3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었다.
배안에선 불을 못 피워 빵을 먹거나 햄·초컬릿·비스킷 등을 식사대용으로 했다.
조타수를 바꿔가며 전속력을 냈으나 출발 4시간만에 갑자기 연료가 떨어졌다. 당초 출발때 거리계산이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강복판에서 물살에 다시 떠내려가다 전대원이 코펠뚜껑·나무판자 등으로 노를 저어 간신히 강변으로 나갈 수 있었다.
큰 배가 지나기를 기다려 연료를 얻은 뒤 다시 항해를 서둘렀으나 이번에는 강물에 잠겨있던 나무를 들이받으며 스크류가 아예 부러져 버렸다. 밤9시20분이었다.
전속력을 내기 위해 운전을 잘 모르는 현지인에게 잠시 키를 맡긴 것이 불찰이었다.
다시 코펠뚜껑으로 노를 저어가며 강변으로 밀어붙여 간신히 절벽옆에 붙여 댔으나 한발만 옮겨도 밀림이어서 어둠속에 헤쳐 나갈수도 없었고 강을 지나는 배도 망망대해같은 강물에 묻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배안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으나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또 모기떼가 몰려든 것이다.

<파도에 휩쓸려 갈 뻔>
새벽녘 모기가 다소 뜸해지고 하나 둘 잠에 빠져 들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겼다.
오전7시,『기상』을 외치는 서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난 대원들이 대장의 지시에 따라 황급히 배를 저어 절벽밑을 빠져 나오는 순간 절벽이 무너지며 엄청난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10여m높이의 절벽이 커다란 파도소리와 함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흙더미속에 수장될 뻔한 순간이었다. 절벽밑이 파도에 솔리는것을 보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 대장의 육감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수중고혼이 될 뻔 했다.
강물이 절벽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이 곳에서는 『데스발랑카다』라고 부르는데 7∼9월에 가장 많고 1년에도 수십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했다.
날이 밝은 뒤 눈에 띄는 마을에 배를 대고 배 위의 물건을 뭍으로 나르자 인디오주민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구경하러 모두 몰려나왔고 일부는 짐나르는 것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서대장이 대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인디오들에게 축구시합을 제의했고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뒤 시합에 들어갔다.
이들이 즐겨하는 것은 리틀 사커로 6인조 축구였는데 전·후반 20분씩 뛴 결과는 12대4의참패였다.
기량도 달리거니와 지칠 줄 모르는 힘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축구가 국기답게 아무리 작은마을에도 풀밭의 「천연구장」이 다 있다는것이 원주민들의 설명.
시합 뒤 선물로 갖고 간 축구공과 정글화를 주었더니 무척 좋아하며 코코넛으로 빚은 마사토라는 술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정글비어」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우리 막걸리처럼 흰색에 독하지도 않아 모두들 몇 잔씌 들이켰으나 마사토가 코코넛을 입으로 씹어 침으로 발효시켜 만든다는 것을 알고 구역질을 시작한 것은 이미 마실만큼 마신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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