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 개혁"… 몸살앓는 헝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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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의 북방러시는 과연 합당한 것인가. 동구는 우리에게 마냥 신천지인가. 그곳은 정말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땅인가.
아니다. 우리와 동구 양쪽에서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신중히,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변화일 뿐이지 결코 성급한 기대나 부푼 꿈으로 해결될 대상은 아니다. 우리와 곧 정식국교를 맺을 헝가리에 가보고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헝가리는 지금 개혁의 바람과 그에 대한 역풍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개혁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사회체제가 변화를 따라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한 여론조사소는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그로스」공산당 서기장의 업적 부분을 놓고 △대단히 좋다 (14%) △다소 좋다 (47%) △다소 불만이다 (27%) △대단히 불만이다 (6%) △모르겠다 (5%)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흐름은 짧은 기간이나마 기자가 만난 헝가리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경제상황과 내정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기대와 우려는 실감할 만 했다.
미술가인 「타마스」씨(50)는 『개혁방향은 좋다. 그러나 실행과정에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외무성공보국 부국장인 「솜바트」씨는 『일부 보수파에서 개혁의 추진속도가 너무 빠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으나 기왕에 시작한 만큼 빠르게 안 하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56년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후 68년 (신경제정책 발표) , 88년 (신기업법 제정) 을 각각 기점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해온 헝가리는 현재 경제적으로는 △1백% 외국인 투자기업허용 △과실송금허용 △국영기업의 민영화추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증권시장을 개설할 움직임이고 정치적으로는 집회 및 결사권의 보장을 비롯, 의회의 권한이 강화됐다.
의회에서의 찬반토론이 TV로 중계되는가 하면 토론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지역발전에 소홀한 의원에 대해서는 주민이 면직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헝가리는 자본주의의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골격 중 상당부분을 도입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는 게 헝가리인들의 실토다. 우선 정치적인 면에서 결사권의 보장에 따라 여러 정당이 생겨나고 있는데 정당간의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냐는 점이다.
「솜바트」씨는 『책임있는 파워,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정당을 조직할 의사가 있겠느냐』고 반문해 정당간의 정권교체는 「먼 훗날의 얘기」라는 점을 완곡하게 시사했다. 경제개혁을 하기 위한 한도내에서의 정치개혁이란 얘기다.
「그로스」서기장도 『정치개혁없이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프랑스의 「아나카기스」교수와의 대담에서 밝혔으나 최근 『새로운 정치단체들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지 권력을 이어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의 경제사정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헝가리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금년도에 대폭적으로 물가를 인상할 방침이다.
연초부터 식료품이 16∼17%, 의료비는 80%가 인상된 것을 비롯, 앞으로 국제전화 (64%), 공용수도료 (2백20∼2백90%) , 전기료(30%) 등을 인상할 계획이다.
이는 그동안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정부가 과도하게. 짊어졌던 부담을 국민들에게 나누어 지게 하고 그 여분을 재정적자 감소나 투자에 돌리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나 이 계획이 발표되자 헝가리 동부지방에서 수만명이 항의데모를 벌였고 TV인터뷰에서 한 주부는 엉엉 울었다.
그런데도 헝가리당국자들은 이같은 부작용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무역정보관의 책임주필이자 국회개혁위원회비서부 책임자인 「배레니」씨는 『생산증대 없이는 임금을 올릴 수 없다』며 『저소득층 등 일부에 대해 한 달에 3백50포린트 (1포린트 14원정도)를, 아이들에게는 모두 한 달에 4백포린트씩 보조금을 주는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솜바트」 씨도 『경제개혁으로 물가인상·실업자발생 등 어려움이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물가도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91년도가 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헝가리의 사정을 살펴볼 때 우리와 헝가리간의 관계, 특히 경제적 교류는 보다 신중한 대응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헝가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다다익선」의 합작투자다. 왜냐하면 외채를 들여오지 않고 생산증대를 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이 5백만달러를 투입, 가전제품공장을, 대우가 1억9천만달러를 들여 합작은행·자동차조립공장(1억달러)·합작호텔 (9천만달러)을 세울 계획이다.
문제는 헝가리정부가 「거액」의 합작투자에만 신경을 쓰지 무역문제는 경시한다는 점이다. 우리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구입할 물품이 별로 없는데다 그나마 EC국가들이 선점권을 갖고 있어 무역에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조성된 데는 우리측이 처음부터 현지사정을 신중히 조사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합작투자를 하겠다고 나선데도 원인이 있다』면서 『용의주도한 점검이 필요한 때』라고 털어놓았다.
또 더 근본석인 어려움은 헝가리정부가 발표하는 정책과 실제 돌아가는 현상이 별개라는 데 있다.
이를테면 수입개방화정책을 취했으면 세부지침이 하부기관에 전달되어야 진행이 될텐데 이것이 여의치 못 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사실은 「배레니」씨도 인정하고 있다.
그는 『그같은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고 있으며 회계장부상의 차이 등 기업경영상 고칠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헝가리와 합작투자할 경우 임금이 낮고 건물 비용이 싸며 낮은 운송비로 인근 동구권에 팔 수 있고 구매력도 있다며 한국이 자동차와 전자계산기·컴퓨터칩 등에 합작투자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헝가리뿐 아니라 공견권과의 교류는 피차 「다른 목적」을 갖고 접근하되 상대방의 의도와 능력에 맞는 수준의 신중한 대책수립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국익과 기업의 이익에 관한 안목을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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