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씨, 내달 TV드라마 출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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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죠. 하지만 잘못한 게 없으니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2000년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탤런트 홍석천(32)씨. 다음달 4일 첫 방송되는 SBS-TV '완전한 사랑'으로 지상파 드라마에 복귀하는 그는 3년 만에 찾아온 기회에 기꺼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커밍아웃 직전까지 洪씨는 '꽤 잘 나가는' 배우였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독특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 비록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TV 시트콤을 중심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어가는 시기였던 것이다. 일주일에 6일은 촬영 스케줄이 있었고 그만큼 수입도 좋았다.

"'움직이면 돈이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배우로 성공하면 할수록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 1990년대 중반부터 동성애자임을 밝혀야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더 이상 성공하면 가진 게 너무 많아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네덜란드 사람이었던 당시 애인이 제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데 실망해 곁을 떠난 것도 결심을 도왔죠."

마음을 굳게 먹고 커밍아웃을 선언했지만 커지기만 하는 파문 앞에 洪씨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 했죠.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도 시달렸고요.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짓밟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광포함이었어요. 혼자 틀어박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욕설들을 보면서 분을 삭이지 못해 울기도 했습니다. 담배도 하루에 두갑씩 피우게 됐죠."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나이트 클럽에선 DJ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고 어렵게 시작한 서울 이태원의 바도 그럭저럭 운영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자임을 밝혔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큰 힘이 됐다.

"인권단체 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 분들을 통해 장애인.외국인 근로자 같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었죠. 우리 사회에도 소위 말하는 '주류(主流)문화'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커밍아웃으로 잃은 것도 사람이고 얻은 것도 사람인 셈이죠."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洪씨는 이번 드라마 출연도 흔쾌히 승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완전한 사랑'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커밍아웃을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직도 "좋은 여자와 결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피하고 싶었을 것도 같은데 洪씨는 당당하다.

"물론 그냥 '탤런트 홍석천'으로 시청자들 앞에 서는 게 목표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드라마든 영화든 동성애자 역할이라도 '독식'할 생각입니다(웃음). 저라면 적어도 과장없는 연기로 동성애자도 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인터뷰 내내 환한 웃음을 보이며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누그러진 것을 느낀다"고 말하는 洪씨.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무슨 불치병 환자를 보는 듯한 동정의 시선이 많아 아쉽다"며 "다수와 다르다는 사실은 비난받을 일도, 동정받을 일도 아니다. 동성애자도 그냥 사람으로 대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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