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풍등’ 스리랑카인 풀려나며 연신 “고맙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고양 저유소 화재’ 피의자 A씨(27·스리랑카)가 긴급체포 48시간 만에 석방됐다.

기름탱크 화재 피의자 영장 반려 #“송유관공사 관리 부실 놔두고 #외국인 노동자 희생양 삼나” 여론

경기 고양경찰서는 10일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반려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A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하지 않기로 한 만큼,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경찰은 A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출국금지 조치 등을 한 뒤 불구속 상태로 수사할 방침이다.

10일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 A씨(27·스리랑카)가 풀려나고 있다. 이날 검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A씨는 이틀 만에 풀려났다. [연합뉴스]

10일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 A씨(27·스리랑카)가 풀려나고 있다. 이날 검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A씨는 이틀 만에 풀려났다. [연합뉴스]

경찰은 지난 8일 오후 4시 30분쯤 A씨를 긴급체포해 9일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1차례 반려돼 10일 오후 재신청한 바 있다. 검찰이 이마저 반려하면서 A씨는 이틀 만에 풀려났다. A씨는 일산 동부경찰서를 나서면서 한국어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저유소가 있는 걸 몰랐느냐”는 질문에만 “예”라고 짧게 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5년 5월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한 A씨는 월 300만원가량 버는 현장직 노동자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아니다. 경찰이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하자 일각에서는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의 안전불감증과 총체적 부실 정황이 드러났는데 근본적인 관리 문제는 덮고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죄를 씌워서는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인 노영희 변호사는 “중실화든, 실화든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주의 의무를 기울였을 때 그런 결과(화재)를 방지할 수 있었느냐가 가장 중요한 구성 요건인데, A씨가 과연 약간의 주의를 기울였으면 위험을 알 수 있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최정규 변호사는 “실수로 풍등을 날렸다가 불이 난 걸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를 구속하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을 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부러 불을 지르는 방화(放火)와 달리 실화(失火)는 실수로 예상치 못하게 불을 낸 경우를 말한다. 형법상 방화죄는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큰 죄지만 실화죄로는 벌금형(최고 1500만원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의 정도가 크면 금고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조금만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불이 나지 않았을 텐데’ 또는 ‘업무상 불이 날 위험이 있었으니 담당자가 책임져야 하는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면 각각 중실화죄와 업무상 실화죄가 된다. 중실화죄와 업무상 실화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서모 변호사가 자청하면서 A씨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경기북부경찰청은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22명 규모의 화재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

고양=전익진·김준희 기자, 문현경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