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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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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국기(國技)인 스모는 피라미드형 사회다. 꼭대기에 있는 선수의 품계는 요코즈나(橫綱). 우리의 천하장사다. 그 아래로 오제키.세키와케.고무스비.마에가시라가 있다. 여기까지는 마쿠우치(幕內)로 불린다. 다음은 주료(十兩). 그 밑으로 네 개가 더 있다. 통칭 '마쿠시타(幕下) 이하'. 스모협회가 내는 품계표(반츠케)의 글씨 크기는 이 순이다. 밑으로 가면 보일락 말락 한다.

스모 대회는 한 해 6회에 15전씩. 마쿠우치.주료.마쿠시타 이하로 나뉘어 치러진다. 승격은 과반승(過半勝) 여부. 세키와케 이하 선수가 과반승을 하면 올라가거나 현상유지다. 그 반대면 한 단계 내려간다. 요코즈나는 좁은 문. '2회 연속 대회 우승 또는 그에 준(準)하는 성적'을 거둬야 한다. 지금까지 요코즈나는 68명밖에 안 된다.

품계는 스모 선수에게 전부다. 도장(헤야)의 하루를 보자. 신참의 기상 시간은 오전 4시. 청소부터 한다. 그리고 연습(게이코). 오전 7시 주료 이상의 연습이 시작되면 다시 허드렛일이 기다린다. 목욕물.냄비요리(창코나베) 준비에서 고참 씻겨주기까지. 반면 주료 이상은 신참의 시중을 받는다. 많게는 열 명을 거느린다. 계급장 문화가 따로 없다. 스모가 흥행한 에도(江戶)시대의 봉건사회 그대로다.

직경 4.55m, 높이 60㎝의 스모판(도효)도 화혼(和魂)의 축소판. 도효에 오른 선수는 한 다리씩 번쩍 들어 힘껏 땅을 밟는다. 땅속의 악마를 쫓는단다. 다음엔 물로 입을 헹군다. 목욕재계 격이다. 소금 뿌리기도 필수다. 도효를 청결하게 한다는 의식이다.

요즘 도효를 몽골 출신들이 들었다 놓았다 한다. 20일 끝난 여름 대회는 오제키 하쿠호가 첫 우승을 했다. 지난해는 요코즈나 아사쇼류가 7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한 해 6개 대회를 싹쓸이한 것도 처음. 키 184㎝에 몸무게 148㎏. 마쿠우치 평균치 체격으로 이룬 위업(偉業)이다. 1990년대 말 대활약한 하와이 출신 3인방(고니시키.아케보노.무사시마루)은 모두 220㎏을 넘었다. 올해 26세인 아사쇼류의 기록 경신은 이제부터다. 하쿠호의 요코즈나 등극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일본 토박이 우승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일본의 국기를 주름잡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3세기 일본 정벌에 나섰던 몽골제국 전함들이 가미카제(神風)로 난파돼 일본이 한 번도 외침(外侵)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글로벌화는 새 영웅을 만들고 약자를 도태시킨다.

정치부문 오영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