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음치불가] 이선희 … 성악가에도 안 밀릴 성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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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노래할 땐 여러 근육이 쓰인다. 복근.요근.성대근.흉근 등 거의 안 쓰이는 부위가 없기 때문에 노래 자체도 큰 운동인 셈이다.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울림통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울림통인 몸을 더욱 성능 좋게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300년가량 묵은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미국 악기 경매 사상 최고가인 354만 달러(약 33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1984년 'J에게'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선희(사진)는 날이 선 섬세한 아름다움이 연상되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같은 명품 울림통의 전형이다.

그는 진성을 주로 사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두성을 비롯한 여러 창법을 응용하고 있다. 좋은 음색에 엄청난 성량은 그의 강점 중 하나다. 여성 록 보컬리스트 팻 베네타나 그룹 '포논브론즈'의 보컬로 유명한 린다 페리의 강력함에 여성적인 면이 혼재돼 있다. 그래서 이선희의 노래에선 눈부시게 강하면서도 여성적인 가냘픔이 묻어 나온다.

음악계에 처음 등장할 당시 이선희는 강력하고 열정적인 창법을 구사했다. 혀가 비교적 두꺼운 편이라 그만큼 소리에 파워를 잘 실어 고음에서도 힘 있고 시원스럽게 뻗어나간다. 완벽하리만큼 깔끔한 고음 처리 이외에 성대와 턱, 흉식 바이브레이션 등을 고루 구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뿐인가. 합창단이나 성악가들과 '맞짱'떠도 성량에서 조금도 밀림이 없다. 성량이 크므로 소리의 공명 또한 크다. 어려운 곡에서도 한 음을 오래 끄는 긴 호흡, 맑고 힘찬 음색을 유지하는 모습은 가히 천하의 이선희답다. 발음과 음정, 리듬 또한 모두 자로 잰 듯 정확하다. 바로 이런 정확성에 날카로운 보이스의 열창이 때론 듣기 거북하게 할 정도다. 어떻게 보면 초기의 이선희는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임에도 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선희의 노래에선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래할 때 힘도 많이 빠지고 편해졌다. 그럼에도 세게 후려치는 부분에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고출력 파워가 반짝인다. 노래할 때 여러 근육을 조직적으로 잘 사용하는 것도 알 수 있다. 록에서 팝, 발라드, 국악까지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까.

이선희는 40대에 들어섰음에도 목 관리를 잘해 여전히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그 자체가 명품 울림통이 돼 단지 '소리를 내뱉는' 게 아니라 '소리를 먹는' 초절정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이선희는 "기교보다는 노래에서 진정성을 불어넣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음달 17,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 이선희의 '인연' 콘서트는 30인조 현악기를 동원해 국악과 양악을 넘나드는 무대로 꾸민단다. 이선희가 직접 탱고 춤까지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거듭나며 내면적으로 더욱 깊어지기만 하는 이선희. 그녀가 말하는 '노래의 진정성'을 이번 무대에서 보고 싶다.

조성진 음악평론가·월간 '핫뮤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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