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두달…전씨의 백담사 생활|"자업자득"되뇌며 정치얘기는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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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이순자씨 부부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한지도만 두달이 돼간다.
지난해 11월23일 5공의 모든 정책에 대해 사죄하고 입산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하산하지 않은 채 은둔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씨의 58회 생일이던 지난18일에도 절 안에서 찾아온 딸 효선씨와 손녀딸, 안현태 전경호실장, 민정기 비서관 등과 함께 찹쌀밥·미역국·떡·산나물 등 고기 한 점 없는 조촐한 아침식사를 했다. 뒤늦게 온 이량우 변호사 (법률자문 역)와 법정스님을 비롯한 인근 사찰 등의 스님 몇분, 인제경찰서장 등이 생일축하를 했고 축전·케이크·꽃바구니 등 일부 선물이 전달되기도 했지만 청와대 시절과 비교하면 『눈물이 날 지경』(한 측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 두사람을 방문한 사람은 이밖에 출국해 말썽을 빚고있는 허문도씨·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박삼중 스님·김장환 목사 (극동방송이사장) 및 가족정도.
처음엔 『구속 처벌』을 외치는 시위대가 자주 찾아와 초입에서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새해 들어 산사가 폭설에 묻히고 난 뒤부터는 조용해졌고 기자들의 집요한 망원렌즈 공세도 뜸해졌다.
측근과 인근사찰스님 등의 부언을 종합해보면 전씨 부부의 하루는 새벽4시30분 법당안에서1백8배하는 예불로부터 시작된다.
수없이 절을 하면서 불경을 외는 게 이때의 절차인데 몇차례 동석했다는 한 스님은 『국민과 민족과 국가를 염려한뒤 노태우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훌륭한 정치를 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더라』고 전했다.
한시간쯤의 새벽예불을 마치곤 가벼운 체조를 하고 아침식사를 하며 식사후 잠시 주지 김도후스님 등과 차를 마시며 주로 불교관계 이야기를 나눈다.
한 스님은 『전씨는「자업자득」「인과응보」등의 불교용어가 입에 배어있을 정도이며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으로부터 편안함을 얻었음인지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낮에는 가끔 산책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데 주로 불교관계서적이며 피곤하면 카셋 테이프로 불경을 듣곤 한다.
이순자씨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은 헛소문이며 청와대 시절부터의 지병인 경증무릎 관절염이 낫지 않고 있으나 3∼4km쯤 떨어진 오세암까지 거뜬히 등산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다만 밤이면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산속추위 등에 견디지 못해 입이 온통 부르텄으며 피부도 상당히 거칠어 보인다고 지난 생일날 다녀온 한 측근이 설명했다.
손녀를 업은 사진 등이 실린 후론 절 근처에 기자들이 있다싶으면 일체 방밖으로 나오질 않고 기자들이 없을 때만 산보를 나선다.
요즘은 폭설로 잠복(?)할 은신처가 없어서인지 기자들의 발길도 뜸해 그만큼 등산 등이 자유롭다고 한다.
음식은 절에서 차려주는 그대로여서 육식구경하기가 힘들다. 닷새마다 교대하는 경호원들도 자기들끼리는 식사불평이 많지만 두 사람은 내색않고 주는 대로 식사를 잘하고있다.
한번은 경호원들이 전씨 몰래 등산로 중간지점에 등산용 버너를 준비해놓고 부부가 도착하자 고기를 구웠는데『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없더라』고 한 경호원이 전했다.
절에서 8km좀 떨어진 산사입구의 용대리 주민들이 동짓날엔 팥죽을, 신정땐 떡국을 끓여 올려보내 경호원들까지도 맛있게 먹었다.
민박촌인 용대리 주민들은 전씨 부부 때문에 등산객이 줄어 장사가 안된다고 대부분 울상이지만 『쫒겨온 그 양반의 처지를 생각할 때 내좇을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이해하고 있다.
전기가 없어 TV는 못보고 신문은 일부러 외면하는 눈치.「히로히토」일왕의 사망소식도 며칠 지난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배터리용TV를 누군가가 한번 시험삼아 가져왔으나 산속이라 그런지 화면이 잡히지 않아 도로 가져갔다. 바깥소식은 측근이나 친척들로부터 구전받지만 얘기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정치얘기는 피한다고 한다. 절에서 초파일 등에 쓰기 위한 소형발동기가 1대 있긴 하나 워낙 시끄러워 되도록 작동을 않고 가끔 경비경찰들이 무전기충전을 위해 활용하고있다.
방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모두 4개를 쓰는데 공개된바 있는 2평 짜리를 부부가 쓰고 나머지는 경호원·가족·기타 내방객이 사용한다.
나무를 때서 방은 뜨끈뜨끈하나 외풍이 세다. 습도조절을 위해 젖은 수건 등을 널어놓으면 아침엔 얼어버릴 정도다.
목욕은 3∼4일에 한번씩 주지가 사다준 김장 담글때 쓰는 대형 플래스틱 통을 방안에 들여놓고 데운 물을 퍼다 부은 뒤 하고 있다. 전씨는 내방객들이 목욕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오면 『저 양반 (부인 이씨를 지칭)이 등을 밀어준다』며 그때마다 장난스레 설명하곤 한다.
화장실은 재래식이나 전씨가 치질끼가 생긴 뒤론 사과궤짝으로 급조해 앉을 수 있게 만들었다.
술은 지난번 허문도씨가 1병 가져와 함께 마신뒤론 일체 마시지 않고 있다.
밤에는 가스등을 쓰는데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 때문에 최근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가족 중에선 딸 부부가 손녀와 함께 자주 오고 미국에 수학중인 둘째아들이 작년말에 다녀갔고 막내가 가끔 오며 형수·제수도 한차례 다녀갔다.
박삼중 스님에겐 동생 경환씨 면회를 부탁했으며 박스님은 서울구치소를 찾아가 『형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전해줬다고 한다.
고2인 막내 재만군은 누나집에서 요즘은 학원을 다니고있다. 워낙 성격이 『아버지를 닮아』(한 측근) 활달하므로 큰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성적도 전체에서 5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다.
전씨는 측근들에게서 청문회 등의 소식을 듣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산골에 온 것 아니냐.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걸 절대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능하면 나에게 떠넘기도록 하라고 말해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그는 되도록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량우 변호사가 국회증언문제를 비롯해 상황을 보고하자 듣고만 있다가 『알아서 하시오』라고 말할 뿐 담담한 표정을 짓더라고 이변호사가 전했다. 다른 측근은 『전씨에게 증언문제대책을 얘기했더니 「내가 나가봐야 오히려 정국불안만 촉발시키고 사실규명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될텐데」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측근들 사이엔 한차례의 서면질문-답변으로 끝내는 방식을 잠정적으로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작년 은둔을 결행 했을때 사과-재산헌납-은둔만 받아들이면 그후의 모든 문제는 청와대와 민정당에 맡겨달라고 했었다』며 『이점은 누구보다 노대통령 자신이 잘알고 있을텐데 이제와 다시 증언하라, 출석하라는 말이 나온다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백담사의 올겨울 적설량은 90㎝쯤. 지금도 두께 40∼50㎝쯤의 눈더미에 온 사방이 하얗게 덮여 있다.
절까지 이르는 8km도로는 체인을 감은 지프가 아니면 도저히 오를 수 없을 정도.
사찰경내 출입허용자만 산밑설악산 매표소에서부터 경찰지프를 이용하고 그 외엔 차량통행을 막고있다.
사찰주위 1개중대, 용대리 입구쪽에 1개중대 등 3백여명의 전경이 철통경비를 서고 있다.
등산객은 가끔 지나다니지만 절안으론 얼씬도 못한다. 백담사 위쪽5백m지점에 백담산장이 있어 음료와 라면 등을 팔고있으나 지금은 전경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전씨 자신은 오랜 군대생활의 단련덕분인지 비교적 빨리 산사의 생활에 적응하고있다. 또 모든 것을 잊겠다는 일념 때문인지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표정도 밝고 담담하다는 것이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인상이다.
그러나 측근들은 전씨가 언제까지 이나마 백담사에 머무를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 측근은 『1∼2월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외부인의 접근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고 3∼5월은 원래 산불통제기간이라 그런 대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나 그후론 등산객이 부쩍 늘어날테니 더 있을 수도 없다』면서『정치권이 빨리 문제를 풀어줘야 옮기든 말든 앞으로를 계획할 수 있을텐데』라고 걱정했다. <백담사=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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