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잊은 KBO … 스스로 먹칠한 품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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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스로 품위를 세우지 못하면 남으로부터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우습게 아는 것은 스스로 우습게 알고 나는 별것 아니라고 인정하는 격이다. 인사이드피치 245회에서 존중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면 품위는 기대할 수 없다고.

유승안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이 21일 TV에 나와 잠실에서 벌어진 한화-두산 경기를 해설했다. 감독관은 KBO 소속이다. 프로야구 운영의 주체로서, 말 그대로 경기를 감독해야 할 감독관이 방송사 마이크를 잡고 경기 해설에 나섰다는 건 본분 착각이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의미다.

그 방송사의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일해 왔던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23일 "처음에 유승안 감독관으로부터 해설 제의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팀장 회의 때 물어봤다. 그랬더니 딱 한 경기고,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다는 말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잘못을 인정한다. 경기인 출신인 내가 야구인들과 익숙하다 보니 너무 쉽게 생각했다. 앞으로는 해설을 하려면 경기감독관을 그만두고 하라고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여기서 하 총장이 말한 '경기인 출신인 내가 야구인들과 익숙하다 보니 쉽게 생각했다'는 부분이 목에 걸린 가시 같다. 하 총장은 지난 8일 취임하면서 '야구인'과 '경기인'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직접 야구를 했던 사람은 경기인, 야구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야구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야구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경기인으로서 야구를 너무 편하고 쉽게 생각해 그 같은 '본분 착각'을 묵과했다는 의미다. 경기인이라면 더 어렵고, 더 주위를 의식해야 할 곳이 야구계여야 한다. 그래야 정통성이 살고, 품위가 생긴다.

프로야구는 8개 구단의 순위를 가리는 경쟁이기 이전에 스포츠다. 스포츠의 기본은 원칙과 규칙(룰)이다. 그 틀 안에서 경쟁의 과정을 통해 감동을 만들어 나가는 게 순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원칙과 규칙은 무시당하고 결과와 순위가 더 중요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본과 원칙을 간과한 게임은 스포츠가 아니라 야바위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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