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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국회 더 못 믿겠다" 국민연금기금운용 체계 '국회 우회 개편'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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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 관치 강화 반대 기습 시위속에 인사말 하는 박능후 장관   (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뒤로 국민연금공단 노조원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국민합의 없는 기금체계 개편을 반대한다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18.10.5   ch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금운용 관치 강화 반대 기습 시위속에 인사말 하는 박능후 장관 (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뒤로 국민연금공단 노조원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국민합의 없는 기금체계 개편을 반대한다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18.10.5 ch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금운용위 상설기구로 전환 #연봉 1억2천만원 차관급 상근위원 3명 신설 #투자정책,성과평가 등 3개 소위원회 담당 #복지부 국장 1명,3개 과장직 사무국 신설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국회를 우회하는 독자적인 기금운용체계 개선안을 내놨다.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법 대신 시행령과 지침을 고치는 방식으로 우회로로 가겠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이런 독자 행보가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와 기금 운용에 정부의 입김이 더 세져 독립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돼 나온다. 특히 복지부가 주주권 강화를 명분으로 지난 8월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결합하면서 개별 투자 간섭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 충직한 집사가 돼 국민 재산을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제도다.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및 권한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며 국정과제다.

보건복지부는 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이 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전환하고 복지부 산하에 사무국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 개편안을 공개했다. 이번 개편안은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다음달 초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 노동계·재계 위원과 일부 공익위원이 "개편안이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 위원에게 안건 제한권을 부여하고 매달 1회 회의를 열기로 했다. 위원장은 지금처럼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기금운용위원회는 그대로 유지한다. 또 위원 3명을 상근위원으로 선정해 투자정책, 수탁자책임, 성과평가보상 등 세 개의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긴다. 소위원회가 기금 운용과 관련한 모든 안건‧정책 등을 사전에 검토한 후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다. 상근위원 3명은 차관급이며 1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상근위원은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 등 3년 이상 경력이 있는 등의 요건을 갖춘 사람을 선정한다.

복지부는 위원회를 지원하기 위해 사무기구를 설치한다. 사무기구 의 장은 국장급 공무원이 맡아 기금운용위 간사 역할을 한다. 정책·운용·평가 등 3개 과를 설치해 소위원회를 지원한다. 복지부 조직이 커지게 된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은 2003년 시작돼 15년간 지지부진했다.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대립했고 여기에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뒤섞이면서 진도를 내지 못했다. 16~19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안이 17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인해 폐기됐다. 복지부 최경일 국민연금재정과장은 "국회에 법률을 제출해 논의할 경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상당 기간 현행 체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어 기금운용체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효율성·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공사로 독립시키려 했다. 하지만 공사가 되면 기획재정부의 통제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반대가 심했다. 민주당은 "독립성이 강화돼 수익률을 강조하면 위험자산 투자를 늘리게 돼 위험이 커진다"며 현행 제도 보완을 주장했다.

국정감사 열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19일 오전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청사. 2017.10.19   ja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국정감사 열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19일 오전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청사. 2017.10.19 ja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국민연금 기금은 1778조원(현재 634조원)까지 커진다. 독립성·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 국회가 개혁 방안을 논의하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부분적으로라도 개편하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금운용위원회가 전문성이 떨어져 지금은 기금운용본부가 올리는 자산운용 계획이나 주주권 행사 지침 등을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 체제를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정부 개편안대로 하면 전문성을 높여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고, 기금 운용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반대 의견이 더 강하다. 민주당에서 먼저 나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국회 통과가 힘들다고 시행령으로 개편하려는 것은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상근위원을 3명이나 임명해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겠다는데, 복지부가 상근위원을 통해 기금운용위원회를 더욱 장악하려 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공무원 조직을 늘리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번 개편안으로 국민연금의 중차대한 의사결정(제도 개혁)에 혼란을 줄 의도가 아니라면 문제 있는 부분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도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연금공단 노조 등은 이날 회의장에서 "가입자 대표 지위를 무력화하고 관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 합의 없는 기금체계 개편을 반대한다"며 기습적으로 피켓시위를 벌였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성명서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한 기금운용체계 개편은 절대 옳지 않으며,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기금 운용의 불신을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번 개편안이 복지부 권한을 강화해 독립성을 저해하고, 상근위원의 요건이 전문성과 거리가 멀며, 소위원회를 둠으로써 옥상옥이 되고 기금운용본부의 자율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급하게 서두를 게 아니라 기금운용위원회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같은 완전 독립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두고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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