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올해 꼭 서른. 공자님께서야 서른이면 뜻을 세우고(而立),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안다'(知天命)고 하셨지만, 한낱 로봇의 몸으론 그 고매한 뜻을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대신 내 지난 30년을 잠시 돌아보고자 한다.
나는 1976년 7월 24일생이다. 생후 몇 년간 나는 인기 절정이었다. 요즘 잘나가는 한류 스타 저리 가라였다. 아이들은 극장에서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를 따라 불렀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서울에서만 18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그해 한국영화 중 흥행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더니 인기란 게 이리도 덧없음에랴. 80 ~ 90년대 나는 잊힌 이름이었다. 간간이 국회의사당이 내 집이요, 관악산 어귀에 내 기지가 있고, 주 활동 무대가 독도라는 둥 우스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전부였다.
내가 다시 '뜬' 것은 키덜트(kidult) 문화 덕이었다.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는 어릴 적 향수를 못 잊는 어른을 일컫는다. 동심 마케팅이 뜨면서 내 옛날 사진과 포스터, 나를 본뜬 프라모델.완구가 비싼 값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로보원 대회에선 마징가제트를 한주먹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 덕택인지 한국의 만화 영웅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다시 전성기를 맞은 느낌이다.
서른 생일에 앞서 내일 조촐한 잔치가 열린다. 서울 국제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서 76년 작 복원 필름 상영이 그것이다. 지난해 10억원을 들여 복원했다. 7월엔 입체 한류 애니메이션으로의 재탄생 계획도 발표될 예정이다.
요즘 와선 산업계에서도 부쩍 내 이름이 많이 불린다. 국가 미래산업인 '로봇 한국'의 기수라는 것이다.
인생의 뜻을 세운다는 나이 서른, '한류 스타'냐 '로봇 한국의 대표선수'냐 그것이 문제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