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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종말]심장 모형 만들고 심장 시 읽고…한 학기 내내 하나만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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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학생들이 종이 박스로 심장과 장기, 혈관의 흐름을 표현해보고 있다. [사진 공성룡]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학생들이 종이 박스로 심장과 장기, 혈관의 흐름을 표현해보고 있다. [사진 공성룡]

지난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사립학교 브라이트웍스(Brightworks) 스쿨. 마요네즈 공장을 개조해 2010년 문을 연 이곳은 학교라기보다는 청소년 캠프 같았다. 건물 내부는 뻥 뚫려 있는데,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청소년들이 다양한 활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미국 브라이트웍스 스쿨 실험 #1년에 딱 3개 주제만 파고들어 #과목·학년 구분 않고 융합수업 #교사 호칭은 협력자 "우린 도울 뿐"

 한쪽에선 바닥에 깔린 큰 천 위에 학생 3명, 그리고 교사로 보이는 어른 한 명이 앉아 하늘색 테이프를 천 위에 붙이며 미로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선 11~14세 아이들이 찰흙·나무·고무·종이 등으로 뭔가를 제작하고 있었다. 다락방 같은 2층 공간에선 고등학생 19명이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열띤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제각각이라 종잡기 어려운 이들 활동을 엮는 키워드는 '심장'. 미로 구조는 심장과 혈관을 형상화한 것이고, 찰흙이나 나무로는 심장과 주변 장기 모양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토론에서 심장과 관련된 시를 읽고 의견을 나눴다.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학생들이 리사 교사(왼쪽에서 세번 째)와 함께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심장과 장기의 혈관을 미로로 표현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공성룡]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학생들이 리사 교사(왼쪽에서 세번 째)와 함께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심장과 장기의 혈관을 미로로 표현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공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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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1년에 3개 학기, 한 학기는 3개월)에 이곳 전교생 88명은 심장에 대해 공부한다. 학기마다 심장·소금 등 주제 하나를 골라 과목 구분 없이 통합적으로 학습한다. 교사들은 어떤 주제로 무엇을 해야 학생들이 배울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학생들과 인체 장기 모양을 만들던 리치 교사는 "과학수업이면서 동시에 미술수업"이라며 "아이들도 어떤 수업인지 굳이 구분 짓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마다 장기 하나씩을 완성하면 이를 모아 1.5m 높이의 사람 모형을 만든다. 학생 마리아(12)는 “심장과 장기를 그림으로만 볼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직접 모양을 만들어 보니 피가 어떻게 흐르고 각각의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의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한 학생(오른쪽)이 시아라 교사와 함께 찰흙으로 심장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진 공성룡]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의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한 학생(오른쪽)이 시아라 교사와 함께 찰흙으로 심장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진 공성룡]

 이 학교는 교과목 구분이 없고, 학년 구분도 없다. 위아래로 네 살 정도 차이 나는 8명을 모아 그룹을 짜는데, 말하자면 이게 '반' 같은 것이다. 이곳에선 교사의 호칭도 '교사(teacher)'가 아니라 '협력자(collaborator)'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학습할지를 논의해 주며 학생의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학교 안에는 3D 프린터, 레이저 절단기 등 다양한 실습기기가 갖춰져 있다.

 협력자는 모두 11명인데 세부 교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가령 고교생을 담당하는 협력자는 3명인데 한 명은 과학을, 한 명은 문학·작문 등 인문학 전반을, 한 명은 수학여행 등 프로젝트를 책임진다.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의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고등학생들이 심장이라는 주제로 문학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심장과 관련된 시를 읽고 교사와 함께 자유롭게 토론했다. [사진 공성룡]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의 '브라이트웍스 스쿨'에서 고등학생들이 심장이라는 주제로 문학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심장과 관련된 시를 읽고 교사와 함께 자유롭게 토론했다. [사진 공성룡]

 이곳은 '학교가 여름방학 캠프처럼 재미있을 수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학교 모토가 "모든 것이 흥미롭다. 우린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다. 설립자 게이버 털리는 "학교는 학생들의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성장 속도나 지식 수준이 서로 다른데 같은 나이라고 해서 한 학년에 넣는 것은 억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라이트웍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유치원생의 호기심과 대학원생의 탐구능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립학교에 있다가 이곳에 온 맨스필드 교사는 “학생과 함께 배우며 성장한다는 철학에 공감했다. 공립학교보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학생 각자가 원하는 학습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숙제가 없고, 시험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던 활동에 재미를 느낀 학생이 자발적으로 집에 가서도 활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시험이 없는 대신 학기 끝엔 교사와 학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 학기 동안 했던 활동을 기록하고 그간의 과정과 성과를 논의한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희망자에 한해 방과 후 수업에서 미국대입시험(SAT)를 대비할 수 있다. 털리 설립자는 “하버드·MIT 등 점점 더 많은 대학이 SAT가 아니라 학생의 활동 이력만으로도 신입생을 뽑기 때문에 학생 각자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열중해도 충분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팀 sung.siyoon@joongangg.co.kr

◈ 이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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