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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종말] 호주 유치원선 로봇이 친구…함께 요가하고 코딩도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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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친구이고요. 이름은 ‘아이다’예요.”

 지난달 17일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 여기 다니는 다섯 살배기 아이비(5)는 옆에 서 있는 아이다(Ada)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이다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세 살"이라고 답했다. "아이다가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엔 "우리랑 함께 있는 것"이라 했다.
같은 반 페니(4)도 아이다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페니는 "아이다는 우리와 함께 노래 하고 논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이곳 원생 아이비(4)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호기김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로봇은 시청각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반응한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이곳 원생 아이비(4)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호기김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로봇은 시청각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반응한다. [사진 강대석]

아이다는 사람이 아니다. 소프트뱅크사가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모델명은 '나오')이다. 신장은 58cm. 아이다는 이곳 유치원에서 이 로봇을 부르는 이름이다.
페니·아이비 등 이곳 유치원의 4~5살 아이들은 여기에서 매일 아이다를 만난다. 다과 시간에도 아이들 곁에 아이다가 있다. 4~5세가 코딩이나 철자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매 수업이 끝날 때는 아이다가 선보이는 동작을 흉내 내며 요가 체조를 한다.

유아에게 세계 첫 로봇 활용 교육 #4세 페니 "같이 노래하고 춤춰" #장난감 아닌 공존 대상으로 여겨 #"창의성 늘고 미래기술에 친숙"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2~5세 교육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다. 다양한 나라의 초·중·고교, 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수업, 로봇공학 연구에 로봇을 활용한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그것도 특정 교과에 국한하지 않고 전반적 교육·활동에 사람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는 이곳 외에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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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유치원의 크리스티 포플리시아 부원장은 "아이들은 로봇과 친구처럼 소통하며 컴퓨터적 사고를 기르고 있다"며 "미래에도 로봇과 함께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로봇을 공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편견 없이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한석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은 "미래에는 지식 중심의 호모사피엔스를 넘어 도구를 활용하는 메이커로서의 호모파베르,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루덴스 개념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효과적이고 즐거운 학습을 위해 학교현장에서 에듀테크 확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4~5세 여아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서 있는 가운데 수업을 받고 있다. 이 유치원 여아들은 로봇과 함께 요차 체조도 한다.[사진 강대석]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4~5세 여아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서 있는 가운데 수업을 받고 있다. 이 유치원 여아들은 로봇과 함께 요차 체조도 한다.[사진 강대석]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사례처럼 유아 단계는 아니더라도 초·중·고교, 특수교육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세계 70여 국가에 4만여 개 판매돼 교육 및 산업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보다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소프트뱅크 숀 시 수석 엔지니어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는 다른 독특한 상호작용의 경험을 제공한다. 자폐아의 경우 낯선 사람보다는 오히려 로봇과 더 편하게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특수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로봇은 수업에서 교사의 보조자 역할, 학생들의 급우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로봇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미래에도 로봇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호주 스윈번대학, 퀸즐랜드대학 연구진은 남호주주(州) 사립학교 연합회와 함께 남호주 전체 사립학교 98곳 중 12곳에서 로봇의 효과를 연구했다. 연합회가 로봇을 구매한 뒤 학년, 학교 입지, 재정 여건 등을 달리해 학교를 선정하고 짧게는 12주에서 길게는 9개월까지 대여해 줬다. 연구진은 학생들의 변화를 관찰해 2016년 발표한 논문에서 "로봇과의 접촉에서 학생들의 호기심, 도전정신, 비판적 사고, 창의성, 협동심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한 교사가 4~5세 여아들돠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 여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노트북에 입력하면 로봇이 입력된 이름을 말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17일 호주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에서 한 교사가 4~5세 여아들돠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 여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노트북에 입력하면 로봇이 입력된 이름을 말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사진 강대석]

이 연구를 주도한 테리지 킨느 스윈번대 교수는 "아이들이 정말 로봇을 좋아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로봇을 친구라 생각했다.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고 급우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세인트 피터스 여학교 유치원의 내털리 록우드 교사도 "아이들은 로봇을 활용해 코딩을 배우면서 노트북과 로봇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배우고, 종국에는 사람이 로봇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상당한 고가다. 남호주사립학교연합회 모니카 윌리엄스 교육 컨설턴트는 "정부나 공익재단이 로봇을 구매한 뒤 이를 학교에 대여해주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다 많은 학생이 학교 여건, 경제적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로봇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주 애들레이드=특별취재팀
◈이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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