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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종말] 호주 교실 한복판에 심장 뛰고 달이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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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4일 호주 수도 캔버라 소재 사립학교인 '캔버라 그래머 스쿨'(Canberra Grammar School)의 한 교실.
이 학교 11~12학년(한국의 고 2~3학년) 10여 명이 수업을 듣는데 이중 절반가량이 스포츠 고글 혹은 보안경 비슷한 장비를 얼굴에 쓰고 있었다. 반투명한 렌즈 너머로 보이는 학생들 눈동자도 보였다. 일부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허공에서 뭔가를 집는 듯했고, 더러는 손바닥을 뻗어 무엇인가를 들어 올리거나 돌리는 동작을 했다.

칠판·종이 없는 수업 ‘캔버라스쿨’ #홀로그램 안경 쓰니 3차원 영상 #손동작으로 이미지 키우고 회전 #에듀테크 혁명이 전통 교육 바꿔

이들이 착용한 기기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개발한 '홀로렌즈'라는 디바이스. 현실 공간에 홀로그램을 투사하고 손동작이나 음성으로 그래픽을 제어할 수 있는 기기다. 스마트폰·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에 연결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무선 컴퓨터처럼 기능한다. 홀로그램은 기기를 쓴 당사자에게만 보이고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매튜 퍼셀 교사가 혼합현실(MR) 기기 '홀로렌즈'를 얼굴에 쓰고 심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교사의 눈에 비친 광경이 실시간으로 교실 뒤 스크린에 투영되고 있다. 이 학교는 3차원 실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수업에 이 기기를 활용한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14일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매튜 퍼셀 교사가 혼합현실(MR) 기기 '홀로렌즈'를 얼굴에 쓰고 심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교사의 눈에 비친 광경이 실시간으로 교실 뒤 스크린에 투영되고 있다. 이 학교는 3차원 실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수업에 이 기기를 활용한다. [사진 강대석]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이른바 미래기술은 생활상을 급속도로 바꿔놓고 있다. 기성세대보다 미래 기술에 더 친숙해져야 하는 유아·청소년이 있는 학교에선 변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다. 교육,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선 미래 기술과 교육의 결합으로 인한 변화를 '에듀테크(edutech) 혁명'으로 부른다.

세계의 유수 학교에선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실감형 학습이 미래교육의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의 학생에게 똑같은 교과서로 동일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전통적 교육의 시효가 끝나고 있다. 2차원인 칠판 속의 평면적 그림은 3차원의 홀로그램으로 바뀌고 있다. 말 그대로 전통적 교실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달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서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서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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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이끌던 매튜 퍼셀 교사가 취재팀을 위해 홀로렌즈 사용을 시연했다. 자신 쓴 홀로렌즈를 노트북에 연동시키자 노트북과 연결된 스크린에 퍼셀 교사 눈에 보이는 모습이 동시에 떴다. 퍼셀 교사의 시야에는 교실 환경, 그리고 가상의 3차원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심장은 살아 있는 것처럼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퍼셀 교사가 손을 앞으로 뻗으니 심장은 좌우로 회전하다가 멈췄다. 순식간에 커지거나 줄어들기도 했다. 퍼셀 교사가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서자 심장이 보이는 각도가 바뀌었다. 다른 학생의 기기를 노트북에 연동시켰더니 스크린에 수성·금성·지구·화성 등 행성들이 일련의 궤도를 이룬 태양계가 3차원 이미지로 나타났다.

이 학교는 지난 2016년 이후로 홀로렌즈를 중·고교생(전체 250명)의 생물·화학·물리·수학 등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인체 장기, 화합물의 분자구조, 수학의 원뿔 등 학습 대상을  3차원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단원에서다. 현실 공간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차단되는 가상현실(VR) 헤드셋(HMD)과 달리 홀로렌즈는 현실 세계에 가상 정보를 입혀 주변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달 14일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옆의스크린에는 학생 시야에 들어온 지구가 투영되고 있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14일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옆의스크린에는 학생 시야에 들어온 지구가 투영되고 있다. [사진 강대석]

홀로렌즈는 2015년 처음 공개된 뒤 의과대학, 건축·설계 업계, 미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이용되고 있다. 기기당 가격이 400만~500만원에 이른다. 이 학교는 2대를 가지고 있는데, 인근 캔버라대학의 장비(8대 보유)를 공유해 쓰고 있다.

12학년 학생인 샘 톰슨은 "종이에서 보는 것보다 3차원 이미지를 더욱 시각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의 조셉 퍼거슨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이런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서 조난자를 구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은 미래 교실에서 쓰일 수 있는 학습 매체로서 급부상 중이다. 종이 교과서나 참고서, 컴퓨터 기반의 멀티미디어 자료보다도 실감 나는 체험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체 속뿐 아니라 우주를 탐험하는 것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체험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교육용 도구로 VR 장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최근 월마트는 미국 내 전체 5000개 매장에서 직원 교육용으로 VR 헤드셋 1만7000개를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서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강대석]

지난달 호주 캔버라 그래머스쿨에서 이 학교 학생이 '홀로렌즈' 기기를 쓰고서 혼합현실(M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강대석]

 국내에서도 일부 교사를 중심으로 VR·AR 활용 교육이 퍼지고 있다. 광주 유안초 최만 교사는 "VR을 활용한 교육에선 하면 세계 곳곳을 가상으로 여행·탐험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며 "조만간 모든 교과에서 VR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구글·삼성·페이스북 등도 이런 추세에 맞춰 VR 장비와 콘텐트 분야에서 각축하고 있다. 구글은 해양·우주·박물관 등 200여 지역을 가상으로 견학하는 가상현실 플랫폼 구글 익스피디션을 개발해 학교들에 공급하고 있다.

호주 캔버라=특별취재팀
◈이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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