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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종말] 입학식 없앤 日학교, 인터넷 게임으로 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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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오레스타드 고교는 전 세계 교육·건축 관계자들의 견학이 잇따른다. 이 학교의 독특한 공간 구조 때문이다.
2005년 문을 연 이 학교는 '디지털'에 방점을 두고 설계됐다. 미래기술을 반영해 수업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든 이에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IT기업이 설립, 인터넷·VR로 수업 #일류 엔지니어들이 컴퓨팅 교육 #덴마크선 판박이 사각형 벽 없애 #이동형 벽체, 교실 자유자재 바꿔

학교는 자체가 하나의 개방형 공간이다. 학교 내 모든 공간의 벽면은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도록 지었다. 일부 교실은 원통형으로 만들고 원통 위, 즉 교실 꼭대기는 확 터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한다. 수업 교육과정을 알리는 것도,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하는 것도 모두 '구글'에서 이뤄진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오레스타드 고교는 미래기술 적용에 대비해 교실 벽을 옮길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일부 교실은 원통형이다. [사진 오레스타드 고교]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오레스타드 고교는 미래기술 적용에 대비해 교실 벽을 옮길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일부 교실은 원통형이다. [사진 오레스타드 고교]

이 학교는 학생을 지식을 소비하는 수동적 주체보다는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는 능동적 주체로 여긴다. 학생들은 교사의 일방적 강의를 듣기보다는 스스로 영화 제작 등 활동을 하며 자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래기술과 교육의 결합인 에듀테크(edutech) 혁명은 이처럼 학교 공간의 물리적 특징을 확 바꾸고 있다. 같은 나이의 학생들을, 똑같은 넓이·구조의 교실에 앉히고, 개인별 적성·수준에 관계없이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던 전통적 교육이 효력을 다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오레스타드 고교는 미래기술 적용에 대비해 교실 벽을 옮길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일부 교실은 원통형이다. 교실 꼭대기는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한다. [사진 오레스타드 고교]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오레스타드 고교는 미래기술 적용에 대비해 교실 벽을 옮길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일부 교실은 원통형이다. 교실 꼭대기는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한다. [사진 오레스타드 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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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물리적 공간을 없앤 학교도 속속 등장한다. 2016년 4월 일본 정보통신(IT)기업 '드왕고'가 설립한 N고교가 대표적이다. ‘N’은 '네트워크(net)' '새로움(new)' '다음(next)' 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 학교의 모든 교육은 인터넷과 가상현실(VR)을 통해 이뤄진다. 지난해 신입생들이 VR 헤드셋을 끼고 가상현실에서 치른 입학식 사진은 일본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동영상 수업을 듣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채팅 창을 통해 바로바로 질문한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N고에선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시간표를 짠다.

학교의 모태인 드왕고의 일류 엔지니어들이 컴퓨팅 교육을 전담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규복 박사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연구진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연간 5일 정도만 오프라인 교실로 등교한다. 오키나와의 본교, 드왕고의 사무실로도 함께 쓰는 요코하마·나고야·후쿠오카 등의 캠퍼스에서 각종 체험활동을 한다. 자기 적성에 맞게 미리 신청하면 학교가 마련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N고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업해 애니메이션·패션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지난해 N고는 롤플레잉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를 활용해 인터넷 소풍을 실시하기도 했다.

대학교육에서 물리적 공간을 없앤 대표적 사례는 미네르바스쿨이다. 2014년 문을 연 이곳은 이미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난해 220명의 신입생을 뽑는데 2만1000명이 지원했다.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회의실에서 에누마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유롭게 회의를 나누고 있다. 우상조 기자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회의실에서 에누마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유롭게 회의를 나누고 있다. 우상조 기자

 미네르바스쿨은 어디든지 원하는 공간에서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강의실이 된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켜면 수업을 듣는 학생과 교수가 모니터에 뜬다. 혼자서 미리 동영상 강의를 듣고 수업시간엔 토론을 벌이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이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있고 금요일은 무조건 실습을 한다. 기업과 관공서, NGO 등 학생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미네르바의 또 다른 특징은 강의실이 없는 대신 세계 7개 도시를 돌며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4년 동안 샌프란시스코(미국), 베를린(독일),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서울(한국), 하이데라바드(인도), 런던(영국), 타이베이(대만)를 돌며 그 나라의 산업과 문화를 배운다.

지난해 11월 켄 로스 미네르바스쿨 아시아총괄 디렉터가 미네르바스쿨의 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해 11월 켄 로스 미네르바스쿨 아시아총괄 디렉터가 미네르바스쿨의 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다른 대학들처럼 학생들은 특정한 한 두 개의 전공만을 공부하지 않는다. 인문학부터 과학, 코딩까지 통섭적으로 배운다. 이 학교의 아시아총괄 디렉터인 켄 로스는 “미래에는 물리와 수학, 심리학 등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융합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미네르바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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