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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e메일로 "조니워커블랙 사와라" 해외출장자에 심부름 시킨 회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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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사가 출장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 일부. "조니워커블랙을 구입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 블라인드 캡쳐]

I사가 출장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 일부. "조니워커블랙을 구입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 블라인드 캡쳐]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내 중견 자동차부품 회사인 I사에 다니는 김모씨는 해외 출장을 앞두고 회사로부터 별도의 지시를 받았다. 출장 복귀 시 양주 '조니워커블랙 750ml'를 사와 서울 본사 재무팀에 제출하라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해외출장자 준수사항'이란 제목의 e메일로 김씨에게 전달됐다.

직원들 '블라인드'에 "회사 내 갑질문화 만연" #출장자에 e메일로 "양주 사와 본사 제출" 지시 #회사 측 "직원 불편 느꼈다면 시정하겠다" 밝혀

김씨는 기자에게 "출장 중인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양주 구입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사실"이라며 "회사 내 만연한 갑질 문화 중 하나"라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김씨는 "퇴근은 물론 휴가 중 카톡 업무 지시는 기본이고 1년에 연차를 4일 이상 써본 기억도 없다"며 "이직을 해야 하는데 연차를 못 쓰게 하니 면접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i사 직원들이 출장 중 구매한 조니워커블랙. [사진 인터넷 쇼핑몰 캡쳐]

i사 직원들이 출장 중 구매한 조니워커블랙. [사진 인터넷 쇼핑몰 캡쳐]

I사에 다니는 A씨도 "직원들에게 조니워커 블루를  사오라고 하다가 이제는 블랙으로 바뀌었다"며 "최근에는 총무팀이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마다 전화와 e메일로 양주를 꼭 사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고 전했다.

9월부터 이달 2일까지 직장인 익명앱 블라인드에는 I사의 기업 문화를 비판하는 성토 글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 글을 올린 회사의 직원들은 기자에게 "회사 상사가 불시에 직원들 휴대전화 검사를 해 '블라인드' 앱이 깔렸는지를 확인한다"며 "앱을 삭제했다 재설치하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I사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올린 회사 생활 중 겪은 고충을 살펴보면 회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글로벌 선두 기업'이란 설명이 무색하다. "1년에 4일 이상 연차 사용 시 불이익", "신혼여행 중 업무 지시", "50일째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8시에 퇴근", "평일 병가 사용 불가"등 그 사연도 다양하다.

이에 대해 I사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주 구매는 회사의 시무식과 종무식 등 회사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일부 출장자들에게 e메일로 부탁을 한 것"이라며 "직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회사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올린 사내 기업 문화 문제에 대해선 "회사의 규모가 크다 보니 일일이 다 확인해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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