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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인명피해 왜 우리가 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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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앙재해대책본부는 19일 태풍 '매미'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1백30명, 재산피해 4조7천8백10억원, 이재민 1만2천여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8일(한국시간) 허리케인 '이사벨'이 동부지역을 강타한 미국에선 이날 현재 9명 사망에 수천명의 이재민 만이 발생했다.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3~4일 전 해당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민 30여만명에게 강제 대피명령을 내리는 등 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형 재난 대비체계를 살펴본다.

한국은…
상륙 8시간 앞두고 해안 정비 허둥지둥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기 4일 전인 지난 8일. 기상청은 '추석연휴 후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예보했고, 중앙재해대책본부도 3단계 대비책을 마련해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행락객과 상습 침수지역 주민을 사전에 대피시키고,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계획대로 이행됐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내용이었다. 실제 이와 비슷한 대비책을 세우고 이행한 해군의 경우 인명은 물론 재산피해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었다.

중앙재해대책본부 권욱 총괄조정관은 "10일부터 각 지자체에 목이 터져라 전화를 걸었지만 제대로 움직인 곳은 부산 정도였다"고 말했다.

부산의 경우 매미 내습을 8시간 앞두고 공무원들이 해안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주민을 강제로 대피시켰다. 이 때문에 부산항에서 크레인이 무너지는 강풍.해일이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마산에서는 해운동 일대에서 10여명이 수장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사고 발생 4시간30분이 지난 뒤 주민 신고를 받고서야 사실 확인에 들어갈 정도였다.

중앙재해대책본부 역시 대비책을 마련한 것 외에 실제 움직인 것은 거의 없었다.

서울.경기도의 양수기를 남부지역으로 내려 보낸 것은 태풍이 지나간 뒤였고, 예비비 지출.민방위대 동원 등도 피해 복구에 맞춰졌다.

행자부 방기성 방재관은 "해일은 1959년 태풍 '사라' 이래 처음이어서 예방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보다 체계적인 예방을 위해 미국의 국토안보부 같은 재해 전담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미국은…
14일전부터 진로 예측·휴교 등 단계적 조치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8일 오후(현지시간) 허리케인(우리의 태풍에 해당) 이사벨호가 동부 해안에 상륙하자 이사벨이 당도한 지역을 차례차례 '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한국은 태풍이 지나간 뒤 며칠 동안 피해규모를 산정한 뒤 특별재해지역을 선포하지만 미국은 허리케인이 닥치면 바로 선포한다. 연방재난관리청의 차드 콜턴 대변인은 "허리케인이 지난간 뒤에 재난지역을 선포하면 쓸데없는 행정절차로 복구가 늦어진다"고 말했다.

연방 재난관리청(FEMA)은 태풍 이사벨이 상륙지점에서 1천6백km나 떨어진 푸에르토리코 북쪽 해안을 지나던 14일 예상진로를 감안해 노스캐롤라이나.버지니아 등 동부 7개 주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을 요청했다. 버지니아의 마크 워너 주지사는 이사벨이 상륙하기 사흘 전인 15일 일찌감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방위군.경찰의 비상 대기와 주정부 공무원 휴가금지, 공공시설의 태풍준비를 명령했다. 미국에서 휴교.대피 등 대부분의 비상조치는 현지를 잘 아는 지방정부가 한다.

16일 이사벨이 동부 해안에 상륙하자 지자체들은 침수를 막기 위한 모래주머니와 강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합판 등을 곳곳에 배치하거나 무료로 배포했다. 해안.저지대 주민들에겐 철수를 요청했으며 섬 지역 등 유사시 철수에 시간이 걸리는 곳에는 강제 소개령을 내렸다.

이사벨 도착 하루 전, 주민들의 철수 행렬이 이어지자 고속도로 순찰대는 일부구간에 일방통행제를 실시해 교통체증을 풀었다. 18일에는 이사벨 상륙 반나절 전부터 노스캐롤라이나.버지니아.워싱턴DC.메릴랜드의 모든 학교와 관공서, 대부분의 기업이 일제히 휴무.휴교에 들어갔고 상가도 철시했다. 허리케인이 닥쳤을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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