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씨 친구 "누군가 만들어 준 신용카드 자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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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2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 앞에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박근혜 대표 테러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은 22일 브리핑에서 "범행 동기와 배후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검거된 지충호(50)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에 나서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씨에게 테러를 지시한 배후세력이 있느냐는 것이 수사의 초점이다.

◆ "조직적 범행이다"=이번 사건을 박 대표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테러라고 규정한다면 개인보다는 조직적 범행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정치 테러는 대부분 조직이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다. 지씨는 박 대표의 일정을 면밀하게 확인한 뒤 흉기를 구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지씨는 지난해에도 한나라당 장외집회에서 폭행사건을 저지르는 등 뚜렷한 반(反) 한나라당 성향을 보였다. 이승구 지검장은 "지씨가 청송감호소 수감 시절 폭행으로 다섯 차례 옥중기소됐다"며 "처벌을 받을 때마다 법원에 낸 탄원서는 전부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현장에서 난동을 피운 박종렬(52)씨도 당비를 낸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이었다.

조사과정에서 지씨와 박씨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사건 당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고 현장에서 지씨의 범행에 동조하던 사람들이 더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변변한 직업이 없는 지씨가 최근 70만원대 디지털미디어방송(DMB)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새 옷을 입고 다닌 것도 의문점이다. 지씨는 조사에서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고 진술했다. 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의 건축사무소에 취직했다"는 말도 했다. 특히 지씨의 한 친구는 본지 기자에게 "지씨가 최근 누가 만들어줬다며 월 한도 70만원짜리 신용카드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씨의 신용상태로는 신용카드 발급이 힘들다. 누군가 그를 매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개인적 범행이다"=15년 가깝게 수감생활을 했던 지씨는 재소자 시절 교도소 관계자 등을 수차례 폭행해 처벌받은 경력이 있다. 지씨는 오히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냈다. 이 과정에서 지씨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워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씨의 한 친구는 "지씨가 최근 신청한 영세민 전세자금 대출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테러로 얻을 실익이 전혀 없다는 점도 단독 범행설에 힘을 싣고 있다. 테러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과 한나라당에 대한 동정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씨가 외쳤다는 '민주주의 만세'라는 구호는 주변의 동조를 얻기엔 정치성이 너무 약하다. 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의 일정은 누구나 손쉽게 알 수 있다. 테러의 범행도구로 문구용 칼을 사용한 점도 쉽게 납득이 안 된다. 수사결과 지씨는 통화요금을 내지 못해 통화정지를 당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과자인 지씨와 중소기업 지점장인 박씨의 연관성도 뚜렷하지 않다. 두 사람 이외 동조세력의 여부도 불분명하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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