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노사는 한배를 탄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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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폭력은 폭력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부른다. 사람은 사랑에 화답하고 이성은 이성에 호응한다.
이른바 「민주화」의 「시민혁명」소용돌이에 휩쓸린 우리사회는 그 동안 쌓이고 억눌린 세대·계층·지역간 갈등의 일시폭발로 「함께 탄 배」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함께 탄 배」를 깨뜨리지 않고 민주대장정의 순항을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사람과 이성에 기초한 대화. 그것밖엔 길이 없다. 민족사의 향방을 가름할 역사의 한해 89년, 우리들의 유일한 선택인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소를 분야별 현장사례를 통해 함께 확인해본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가리봉동 구로3공단 내 서울엔지니어링 정문 앞. 회사측이 노사협상 안을 거절한데 불만을 품은 노조원 30여명이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근로자들의 출근을 막다 노조원 아닌 근로자들과 충돌했다.
50여명으로 늘어난 비노조원들이 30여명의 노조원과 서로 치고 받는 난투극을 벌였다. 양측에서 각 1명씩의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갔다.
비노조원들에 의해 정문에서 밀려난 노조원들은 잠시 후 20여명의 노조원들을 더 데리고 나와 화염병 10여개를 던지며 각목 등을 들고 비노조원 축출작전(?)을 폈다.
이 충돌로 양측에서 2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으며 공장건물 유리창 수십장이 박살난 뒤 투입된 경찰에 의해 진정됐다. 이날 노조 측은 회사측에 ▲연말상여금 1백50% 일시지급 ▲노조간부와 싸운 작업반장해고 등을 요구했다가 회사가 ▲상여금 2회 분할지금 ▲작업반장해고 불가방침을 통고하자 즉각 실력행사에 나섰었다.
조금만 양보하면 서로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쟁점들이 강경으로 치닫는 바람에 폭력을 낳았고 10여년간 동고동락해온 동료끼리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27일 노조인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근로자중 신나를 뿌린 근로자 5명이 몸에 불이 붙어 1∼3도씩의 화상을 입은 모토롤러코리아(서울 광장동 445)의 경우도 노사 양측의 강경책이 근로자의 희생을 부른 대표적 사례.
이 사건으로 모토롤러코리아의 노사분규 타결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졌고 결국 경찰과 비노조원 2백여명 등이 29일 밤 해머로 벽을 부수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노조원들이 철야농성을 벌이던 전산실을 덮쳐 농성근로자 14명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또 다른 폭력사태가 빚어졌으며 근로자들 사이의 갈등은 앙금처럼 남게됐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해 6월 6일 계열사인 아남정밀이 임대사용중인 공장건물에서 48일 동안 농성을 벌이던 노조원 64명을 2백여명의 아남정밀직원을 동원, 집단 구타한 뒤 해산시키면서 중역 등 사용자측 3명과 노조집행부 4명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은 대한광학(대표 나정환·구로1공단)은 뒤늦게나마 노사가 한발씩 양보, 폭력을 자재함으로써 원만한 화합을 이루게 됐다.
당시 민주노조 측은 감원금지·상여금 1백%인상을 요구하며 노조위원장 김종삼씨(34)를 감금하고 아남정밀의 경리장부를 빼앗은 채 극한투쟁을 벌였다.
회사측은 이에 맞서 구사대를 동원, 밀고 당기는 폭력의 악순환이 벌어졌었다.
결국 양측관계자들이 모두 경찰에 구속된 뒤에야 노사 양측이 협상과 타협을 벌여 합의서를 내 구속된 7명이 6월 28일 검찰에서 풀러난 것을 계기로 노사갈등은 완전히 해결됐다.
이 회사 노조위원장 오대성씨(32)는 『폭력사건을 계기로 회사측이 종전과는 달리 노조를 인정, 노조의 요구사항 등 수용 가능한 부분은 적극 수용해주고 있다』고 원만한 노사관계에 만족해했다.
대표 나씨도 『폭력사태가 수습된 뒤 「근로자와 회사가 함께 살자」는 뜻으로 사시를 「공생공영」으로 바꿨다』면서 『당시 농성·폭력으로 20여억원의 손해를 보았지만 최근 노사협조 부위기에 따라 월 평균 쌍안경 생산량이 2만5천대에서 4만대로 늘어나는 등 경영조건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발했다.
석탑노동연구원장 장명국씨(42)는 이러한 노사간 폭력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사용주는 지금까지의 봉건적·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노조도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는 민주적 사고방식으로 대화와 타협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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