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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2창군」의 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해부터 거세게 몰아친 민주화 열풍은 올 한해 군부에 대한 매서운 질타와 함께 자성·자숙을 강요했고 군은 계속되는 여론압력에 밀려 거듭 태어나기 진통을 겪어야 했다.
1년 내내 국민의 관심사가 된 「12·12」 「5·17」 「삼청교육」 「숙청」 등 선배군인들의 전비 등으로 인해 군 지도부는 「국민의 군대」임을 국민 앞에 새삼 다짐해야 했고 『제2의 창군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호소해야 했다.
무소불위의 성역에서 거칠 것 없어 보이던 군부의 이런 모습은 엄청난 변화였다.
국방부·육본은 물론 보안사·수방사·정보사에까지 국정감사 일정을 맞아들였고 한때 권력의 총체로까지 비쳐졌던 보안사를 존폐위기로 몰아넣으면서 인원·기구를 감축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화 물결 속에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 테러 사건이 무시 못할 촉매 역할을 했다.
금년 초만 해도 군의 이러한 변화는 애측키 어려운 것이었다.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군이 매도되는 현실에 울분을 느꼈다』고 전역사에서 토로했을 때 국민들은 긴장했으며 오부장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군부내의 응어리진 감정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었다.
테러 범인들이 군장성을 포함한 장교 및 하사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여러 장성·영관장교 등이 『나라도 했을 것』이라고 내뱉은 것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또한 전 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 등의 처리나 주범이라고 하는 이규홍 준장 등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 등이 이러한 군의 분위기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부장 사건에 대한 충격파는 대단해 군사문화 비판에 대한 여론이 비등했고 군은 더욱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자복 당시 국방장관이 퇴임석상에서 『재임 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때』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국정감사·청문회를 통해 시련을 겪은 군부는 두 가지 얼굴로 나타났다.
한 갈래는 과거 정치개입이 따른 자기비판 속에 정치적 중립을 외치면서 군의 신뢰회복과 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 노력이다. 이런 노력은 군사기밀 보호법의 완화·보도규정 개정·국방백서 발간·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의기의식 속에 내부 결속도 다지고 있다.
군부는 잘못은 인정하되 일방적 공격이나 비난에는 정공법으로 당당히 맞서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는 것이다.
시국의 추이, 특히 좌경세력의 급신장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주시하는 군부의 거취는 이들 지도부가 정치적 중립을 역설하고 있지만 과연 어느 결정적 순간에 어떻게 표출될지는 의문이다.
군부의 뉴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젊은 장성들을 비롯한 고급 영관장교단이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깊이 인식, 정치적 중립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지만 그런 의지에 못지 않게 좌경화에 대한 경계의식이 군부 내에는 뿌리깊기 때문이다.
민주화 열기 속에 국민의 군대로 거듭 태어나려는 군.
올 한해는 군의 「제2창군」 디딤돌로 기록될만한 해인 것이다. <김종혁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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