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삶의 속도 늦춰 봐" 그림자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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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빠가족
강정연 지음, 전상용 그림
바람의아이들, 140쪽, 7000원

5월이 가정의 달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평소 사람들이 가족에게 소홀하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5월 한 달만이라도 가족에게 잘하라는 뜻일 터이니. 사실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가족에게는 무관심.퉁명스러움.신경질 등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바빠 가족'에 등장하는 유능한씨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아빠 유능한씨는 회사일에 온 관심과 열정을 쏟아붓는, 대한민국 가장의 전형이다. 엄마 깔끔 여사는 집안을 쓸고 닦고 불고 터는 데 24시간을 바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지향형 주부다. 딸 우아한양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항상 외모를 가꾸는데 여념이 없다. 아들 다잘난군은 학급의 모든 대소사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이 가족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정신없이 움직이지만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휴, 바빠죽겠어!"

'바빠가족'의 주인공들이 제정신을 차리게 되는 계기는 그림자가 서로 바뀌면서다. 그림자들은 유능한씨 가족에 느리게 살 것을 요구한다. 생활 속도가 느려지다보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유능한씨는 아들이 밥 먹을 때만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잘난군은 누나의 입 옆에 점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식이다.

다소 과장은 있지만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사람과 그림자의 승강이나 가족들이 그림자들의 집단행동에 허둥대는 광경은 꽤 재미나다. 조금만 삶의 속도를 늦추고 머릿 속을 멍하니 비우는 '행복한 게으름뱅이'가 되자는 작가의 말은 어쩌면 이 책의 독자인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아니라 책을 사주는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가 아닐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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