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섬으로 버스 다린다|"아듀 88…우리 마을 최고의 해" 총연장 23.6㎞ 방조제·연륙도로 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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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8년은 섬 주민들의 꿈이 43년 만에 이루어진 보람의 한해였습니다.』
1백35개 섬으로만 형성된 경기도 옹진군민들. 섬이 뭍으로 이어지고 섬과 섬에 다리가 놓여 뱃길이 아니면 나들이가 막혔던 생활에 변혁을 이루었기 때문.
나아가 서해안 시대의 전초기지로 곧 탈바꿈될 기대 속에 내년 1월1일부터 인천직할시로 편입, 직할시민이 돼 더욱 그렇다.
섬 가운데 가장 변모된 곳은 육지로 연결된 대부도·영종도와 연륙된 용유도를 비롯, 섬끼리 이어진 시도·신도.
특히 대부도는 87년4월 착공된 시화지구 개발사업에 따라 지난 6월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전곡리 마산포구에서 탄도·선감도·불도를 거쳐 놓인 국내 최장인 총 연장 19.3㎞의 방조제가 완공돼 뭍으로 변했다.
이에 이 일대 4개 섬의 1천4백여 가구, 5천6백 명이 「섬사람 신세」를 벗고 찻길까지 뚫려 누대로 겪어온 교통 불평을 말끔히 씻었다.
날씨가 나쁠 땐 꼼짝도 못했던 섬 주민들은 이제 배가 아닌 차편으로 인천 나들이에 나서 엊그제의 불편이 「옛날의 추억」이 됐다.
이에 따라 수산물을 제값에 내다 팔아 소득이 높아졌고 육지의 공산품 반입도 수월해진 가운데 연륙 이후 선감 1, 2리와 방아머리 선착장을 중심으로 관광개발붐까지 서서히 일고 있다.
여기다 주민들은 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97년 마무리될 시화지구 개발사업의 제2방조제가 완공돼 바다가 메워지면 서울 여의도 면적의 1백배나 되는 넓은 간척지가 들어서고 1천8백여 기업체가 입주해 중국대륙을 겨냥한 전초기지로 발전하는 것.
대부면 안현기 면장(57)은 『연륙 이후 5∼6개월 사이 섬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수준이 놀랄 만큼 향상됐다』며 『주민 모두가 이젠 직할시민이 된다는 긍지 속에 구습을 버리는 등 모든 게 변모했다』고 말했다.
용유면 용유도와 영종면 삼목도가 연결된 것은 지난 11월14일. 84년10월 50억5천8백만 원을 들여 두 섬 사이에 높이 4m, 총 연장 4.3㎞의 해상도로가 개설된 것.
상단폭 7m, 하단폭 23m인 이 연륙도로엔 두께 50cm의 방파벽이 설치돼 어떤 파도나 해일에도 견뎌 낼 수 있다. 이 도로를 내는데 30만t의 돌이 들었고 10t트럭 4만 여대와 연인원 8만6천 명이 동원된 대역사.
용유도에서 인천까지 뱃길은 32.7㎞. 하루 한번씩 다니는 여객선에 2시간30분이나 걸리던 인천나들이는 이젠 옛일.
연륙도로 개통으로 인천∼영종도간 2.6㎞를 하루 24회 왕복 운항하는 카페리호와 연결, 1시간30분만에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가위 교통혁명이 이뤄졌다.
7백66가구 2천7백 명의 용유면 주민들은 새해부턴 인천 직할시민에다 인천의 l일 생활권으로 탈바꿈된다.
자녀들의 「인천유학」이 통학으로 바뀌었고 86년9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을왕리 해수욕장의 관광수입도 늘어나 주름진 섬 주민의 얼굴에 깊게 팬 골이 어느새 환히 피였다.
주민 백운룡씨(50·용유면 남북리)는 『자식 둘 모두 인천에서 유학을 해왔으나 이젠 큰짐을 덜었다』며 흐뭇해했다.
섬이 뭍이 된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북도면의 열도를 이루고 있는 시도와 신도 두 섬도 87년6월 착공된 연륙도로 개설로 지난 여름부터 길이 뚫렸고 콘크리트 포장까지 돼 곧 준공되면 두 섬이 한마을이 된다.
이 연륙도로는 높이 4.5m, 총연장 5백40m. 이렇듯 두 섬이 한마을이 되자 신도주민들이 배타고 시도에 있는 면사무소와 지서 등을 찾던 오랜 배편도 풀렸다.
게다가 인천에서 40㎞쯤 떨어져 하루1회 왕복하던 배편도 11월22일부터는 영종도를 하루 1회 왕복하는 37t급 카페리호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육지와 연결되면서 밀려드는 문화 틈에 낀 퇴폐풍조가 나타나 옥의 티가 되고 있어 주민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기다 도둑이 있을 리 없던 섬이 육지로 이어 지자 난데없는 농·수산물 도둑이 잦아 새로운 걱정거리.
섬과 섬이 연결돼 자가용 승용차까지 드나들게된 대부도와 용유도, 똑딱선 대신 버스가 다닐 새해.
다가오는 새해에는 서해안 시대 개막의 전초지로 탈바꿈할 기대까지 갖고 있다.
옹진군민들은 그래서 며칠 안 남은 올해를 보내가 마치 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 같다.
보람의 해에 벅차 옛 섬을 생각하는 한 주민이 한마디를 남긴다. 『해방 이후 43년만에 맞은 최고의 해 88년이여 뭇가슴을 맞대 아듀』라고. <웅진=김정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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