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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여름의 폭염은 우연이 아닌 일상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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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기록이 한 번 깨지면 우연이다. 두 번째 깨지면 우연의 반복이다. 세 번째 깨지면 추세가 된다. 매년 깨지면 변화가 된다.

역대 최장의 여름 폭염 기록 #지구촌도 비정상적 기후로 피해 #온실가스의 충격을 받은 지구는 #인간에게 극단적 날씨로 되갚아

전 지구의 연 평균 기온이 높았던 해를 순서대로 18위까지 나열해 봤더니 2001년 이후에 열일곱개 연도가 들어갔다. 뜨거웠던 다섯 해는 2016년, 2015년, 2017년, 2014년, 2010년 순이다. 이제 기후는 우연을 벗어나, 추세를 넘어, 변화에 이르고 있다. 해마다 온실가스 농도가 최곳값을 경신하지만 가장 뜨거웠던 해는 해마다 바뀌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 지구 기온은 대기보다 열용량이 큰 바다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가장 뜨거웠던 해인 2016년에는 온난화와 함께 기온을 상승시키는 자연적인 바다 순환인 엘니뇨가 발생했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아니라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 한국의 폭염 일수는 올해 31.4일이었다. 1994년 29.7일의 최고 기록을 깼다. 한국뿐 아니라 북반구는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과 일본은 폭염이 자연 재난이라고 선언했다. 북극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으며, 유럽과 미국 서부 지역에 폭염이 발생하고 산불이 번졌다. 유럽에서는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강물과 바닷물이 너무 따뜻하거나 가뭄으로 강물이 말라 원자력 발전소를 중단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기후변화와 어떻게 관련돼 있을까.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축적돼 대기가 뜨거워지면 바다에서 증발이 많아져 대기는 습해진다. 습한 공기가 상승해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리고 다시 건조한 공기가 되어 그 주변 지역으로 하강한다. 이러면 습한 지역은 호우가 더 많이 발생하고 그 주변 지역은 더 건조해진다. 즉, 홍수와 가뭄이 인접한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지구가 온난화하면 파동을 이루며 서에서 동으로 진행하는 제트기류가 달라진다. 제트 기류는 고위도와 저위도 간의 기온 차로 발생한다. 제트기류는 남쪽의 과잉 에너지를 북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온난화는 북극 지역이 저위도 지역보다 더 크게 일어난다. 이로 인해 고위도와 저위도 간의 기온 차가 줄어들면 제트기류가 비정상적으로 느려지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파동의 진폭이 커진다. 이때 고기압과 저기압의 움직임이 정체돼 같은 날씨가 한 장소에서 지속한다. 화창한 날로 시작했지만, 지속하면 폭염으로 변한다. 단비로 시작했지만, 지속하면 폭우로 탈바꿈한다.

시론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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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기류는 북극권의 공기와 중위도의 공기를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즉, 여름철 도심 상가에서 문을 열어둔 채 위에서 아래로 강한 바람을 불게 하는 장치인 ‘에어커튼’과 같은 이치다. 에어커튼 바람이 강할 때는 상점 안쪽 시원한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다. 반면, 에어커튼 바람이 약해지면 상점 안쪽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 지구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북극권에 고립돼 있던 공기가 한반도 쪽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아무리 북극 지방이 따뜻해졌다 해도 겨울철에는 우리에게 한파로 다가온다.

국립기상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온난화는 여름철에 뚜렷이 나타나고 겨울철에 좀 더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전망한다. 여름철에는 자연적인 기온 변동이 작아 온난화 신호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겨울철에는 자연적인 기온 변동이 커서 온난화 신호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앞으로 여름철 폭염은 뚜렷하게 증가하고, 한파는 계속 발생해도 그 추세는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기후로 변하는 과정에서 날씨의 변동 폭이 커져 가뭄과 홍수라는 상반된 극한 날씨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

개별적인 극한 날씨는 기후변화와 명백하게 연관될 수 없다. 이런 날씨는 기후변화가 없다 해도 자연 변동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후변화는 극단적인 날씨의 빈도와 강도, 공간적 범위, 기간과 시기에 영향을 준다. 이를 통해 극단적인 날씨의 발생 확률이 변할 수 있다.

이는 야구선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 야구 선수가 홈런을 평소보다 20% 더 쳤다 해도 특정 홈런을 스테로이드 효과로 간주할 수 없다. 그러나 스테로이드가 전체 홈런 확률을 20% 더 높였다고 말할 수는 있다. 기후변화는 극한 날씨를 더 많이 발생시키는 스테로이드로 볼 수 있다. 스테로이드가 금지 약물이듯이 기후변화도 막아야 한다.

지구는 인간이 가하는 온실가스라는 충격을 받아 인간에게 극단적인 날씨로 되돌려준다. 비정상이라고 간주했던 극단적인 날씨는 이제 우연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 미래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이므로 우리는 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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