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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균형감각 잃은 성범죄 신상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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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나 성매수자의 이름.직업.주소.사진.범죄경력 등을 지역주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보공개 기간도 출소 후 10년으로 확 늘렸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성폭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범죄다. 더구나 용산 초등학생 사건에서 보듯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뿌리 뽑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개정안은 여러 면에서 지나치고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한번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언제라도 또다시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움직이는 성폭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막연한 이유만으로 사진 등을 공개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을 찍는 행위다. 이쯤 되면 한번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기는 어려울 듯싶다. 반상회 등에서 입에 오르내릴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족이 당해야 할 고통은 너무 크다. 아동 성폭력이어서 강력 응징해야 한다면 미성년자에 대한 다른 모든 범죄도 마찬가지여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성범죄 신고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기소율도 낮다. 성범죄를 저지른 10명 중 1명 정도가 처벌받는 셈이다. 처벌받지 않은 성범죄자를 색출해 반드시 처벌받도록 해야만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정안이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을 폐지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친고죄를 폐지해 신고율을 높여야 처벌도 가능하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를 줄여야 신고율이 높아질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교정.치료 프로그램을 내실화하는 일도 신상공개에 앞서야 할 일이다. 성범죄자가 교육을 통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사회에 원만히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법의 정신에도 맞다. 다른 대책은 제쳐 두고 신상공개부터 강화하는 것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