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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5·18'은 다시 왔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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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으며, 5.18 관련 상훈(賞勳)이 박탈되는 등 광주 5.18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치유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80년 5월 당시와 같이 광주시민을 '폭도(暴徒)'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광주 5월에 대한 명예가 회복된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5월의 연장선상에서 6.15 민족통일대축전 및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가 광주에서 개최될 예정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5월이 될 전망이다.

1980년 5월 이후 거의 4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이와 같은 변화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세계만방에 보여 준 또 하나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은 아시아와 제3세계에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고 해 매년 5월이면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聖地)'를 찾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광주의 현주소를 보면 착잡하다. 4월 시작된 노사 간의 갈등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고 있으며, 5월 31일 실시될 지방선거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자를 선택하는 축제의 장이 아니라 중앙 권력과의 연계하에 자신의 이익과 명예만을 앞세우는 일부 '정치꾼'들에 의해 그 본래 의미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26년 전 광주는 분명 '광주의 현주소'와는 달랐다. 주먹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골목길 경비를 섰으며, 한마음 한 뜻으로 대동(大同)세상 만들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앞장섰다. 어깨동무하며 함께 평화와 통일.민주를 염원했던 것이다.

80년 5월 당시 독재와 억압의 질곡 속에 지구촌 사회의 모서리에 불과했던 우리 대한민국. 이제는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리에 개최했고, 세계 10대 경제권에 들어서고 있는 등 중심부에 진입하고 있는 중강국(中强國)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5월 정신'을 외치며 쇠파이프가 등장한 오늘의 현실과 26년 전의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공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고, 시민사회의 활동이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활발하며,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入城) 등 소수파의 의견 개진(開陳)도 자유롭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화적 시위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폭력은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으며,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일까. 어린이.어버이.스승 모두 평화와 사랑의 상징어들이다. 그러나 5.16, 5.18은 아직도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하고 있다. 5월을 평화의 달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26년 전 광주 5.18에서와 같이 우리 모두가 부둥켜안고 화해와 민주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광주발(發) 민주화 운동과 같이, '광주발' 합리적 선거와 평화적 시위는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사회 변화와 국력의 신장에 걸맞은 시민의식과 투표행태, 그리고 시위문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80년 5월에서처럼….

오재일 광주전남발전연구원장·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