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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 특사 절반의 성공 … 3차 정상회담에 운명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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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 비핵화의 교착상태를 뚫고 남북 협력에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대북 2차 특사단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대표로 한 대북 특사단이 그제 평양을 방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인사들을 만나고 귀환했다. 이번 방북에서 가장 큰 성과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재확인이다. 남북은 또 오는 18∼20일 평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남북, 18∼20일 정상회담 추진 #비핵화 이전 종전선언은 무리

어제 정 실장의 브리핑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대북 특사단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며 “비핵화 결정에 대한 나의 판단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또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3분의 2가 완전히 붕락(붕괴)해 핵실험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북한은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한 데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동시행동 원칙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했다고 정 실장이 전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북한은 ‘선 종전선언-후 핵 리스트 제출’의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 특사단을 통해 북한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확인되기를 바랐던 국민들로선 당초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성과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가 신속하게 이뤄질 거로 생각했다.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시하고 국제사회의 검증 과정을 거친 뒤 비핵화 조치에 곧바로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전문가 참관도 없이 나홀로 해체한 뒤 어떠한 비핵화 이행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핵·미사일 생산을 계속하는 인공위성 영상을 연거푸 공개하며 비핵화 의지를 의심해 왔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종전선언 요구는 집요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일부의 주장처럼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 동맹이 약화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상관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전에 서둘러 종전선언부터 하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정치적 선언이라 하지만 그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이 나오면 한·미 연합훈련이나 위기 시 미국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명분을 잃게 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트럼프 미 대통령도 비핵화에 앞선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제 한반도의 운명은 2주 뒤 열릴 3차 남북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 이번 특사단이 거둔 절반의 성공을 바탕으로 남북 정상이 완벽한 북핵 합의를 도출해 한반도 위기의 분수령이 돼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적극 설득해 비핵화의 구체적 행동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필요하면 얼굴까지 붉히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북한 김 위원장 역시 북핵과 번영을 맞바꿀 마지막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더 이상 구체적인 비핵화 약속 없이는 미국을 설득할 수 없으며 한반도 공동번영의 청사진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