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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先종전선언 요구…특사 승부수에도 북·미 이견 해소는 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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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특사단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미국과 북한 중 누가 먼저 행동할지를 놓고 진행 중인 팽팽한 비핵화 협상 줄다리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특사단을 이끌고 평양에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동시 행동 원칙’을 강조했음을 공개했다. 동시 행동 원칙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 보장 및 제재 완화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북한의 요구 사항이다. 정 실장은 “북한은 북한의 선제적인 일련의 조치들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진다면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고 알렸다.

‘북한의 선제적인 일련의 조치들’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등이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는 결국 종전선언이 된다.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관련, 정 실장은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관련국 간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첫 번째 단계로 생각하며 북한도 이런 우리의 판단에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김 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을 교착 상태인 북·미 협상의 메신저로 삼아 비핵화 협상의 공을 미국에 넘기며 종전선언을 다시 요구한 게 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진전으로 평가할지는 미지수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ㆍ미 적대 역사 청산과 비핵화 실현’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던 ‘1년 내 비핵화’보다 더 늘어났다. 볼턴 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4ㆍ27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린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비핵화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첫 임기(2021년 1월 종료)’로 하면 비핵화 완료 시한이 2019년 4월에서 1년 9개월 더 늘어난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더 잘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살라미 전술’을 우려할 수 있다.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인식차가 드러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 실장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시험장 폐기를 비핵화 조치로 인식한다. 그러나 한 전직 외교관은 “트럼프 정부는 이를 비핵화 조치로 보지 않는다. 폐기했다지만 검증도 되지 않은 데다, 북한의 핵 능력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미국은 ‘북한이 초기 비핵화 조치 혹은 실질적 조치를 취하면 종전선언과 교환할 수 있다’까지는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인데, 북한은 종전선언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이후 취할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제재 완화 등 다른 보상과 연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동창리, 풍계리 조치와 종전선언을 등가로 보는 반면 미국은 진짜 비핵화 조치가 종전선언에 앞서 먼저라는 생각인 만큼 이런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라고도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동시 행동 원칙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나 미국의 양보 없이는 북ㆍ미 간 협상 교착 국면의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일각에선 연내 종전선언에 합의한 남북이 공동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구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문 대통령이 18~20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협의하기로 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에서 실질적 진전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제 말로 하는 의지 표명보다는 신고-검증-폐기라는 비핵화의 골자로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ㆍ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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