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 덕에 열렬한 축구팬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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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데뷔 20주년인 데다 월드컵까지 겹쳐 무척 바빠요. 그동안 인기를 모으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부터는 고국 음악계를 위해 뭔가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칭송했던 소프라노 조수미(44)씨가 13일 서울에 도착했다. 16일 성남아트센터 독창회를 마친 뒤 3월 말 세상을 떠난 부친의 묘소도 처음 참배할 계획이다.

조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 연주회를 앞두고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8월 말 DVD로 출시될 당시 연주 실황은 그녀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思父曲)'이 되고 말았다.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하려는데 어머니가 말리셨어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으면서 노래하기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아버지를 생각하며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부르고 마지막 앙코르곡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부르기 전에 청중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에 가지 않고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고. 기립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튿날 신문에 '예술가의 용기가 뭔지를 가르쳐준 연주회'라는 기사가 났더군요."

조씨는 열렬한 축구팬이다. 그것도 아버지 덕분에 그렇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축구 보러 많이 다녔기 때문이란다. 우연인지 그녀는 축구 강국인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축구를 모르면 대화에도 못 낀다고 한다. 축구 경기가 열릴 때는 국회 일정까지 미뤄질 정도란다.

"2002년 월드컵 때 대전에서 붉은 악마 옷을 입고 한국-이탈리아 전을 응원했어요. 너무 떨려서 관람석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밖에 나가 있다가 '와'하는 소리가 나면 들어와서 보곤 했습니다. 로마로 돌아가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까지 말을 건내지 않는 등 화가 단단히 났더라구요. 한국팀에게 진 것이 상당한 충격이었나봐요."

조씨는 얼마 전 로마에서 월드컵 주제가인'오 대한민국'을 녹음했다. 6월 13일 토고와의 첫 경기가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기장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조씨의 모습이 서울 상암경기장 대형 화면에 중계될 예정이다. 조씨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이 3대 0으로 이길 거라고 내다봤다. 6월 23일에는 한국-스위스 전이 열리는 하노버에서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가수들과 오페라 갈라 콘서트도 연다. 이 같은 스케쥴은 그녀의 '축구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씨는 1986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 무대에 서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7일부터는 다음달 10일까지 뉴욕 카네기홀 등 미국 6개 도시 순회공연이 잡혀 있다.

"데뷔 20주년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9월 27일 예술가곡으로만 프로그램을 꾸민 예술의 전당 공연입니다. 8월 말 호암아트홀에서는 중.고교 음악교사들을 무료로 초청해 이야기를 곁들인 음악회도 열 계획입니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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