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소리가 지겹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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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투기 폭음공해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바다새와 함께 고기를 잡고 사는 조용하고 아늑하기만 했던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남양만 변 속칭 「고온리」 어촌에 미 공군 사격장이 들어선 후 8개 마을 6백여 가구 4천여 주민들이 35년 동안 전투기 폭음과 폭격음 등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빗나간 총탄이 날아들어 마음놓고 농사일을 못하고 가축들이 폭음에 놀라 낙태율이 높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욱이 포탄에 맞아 숨지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폭음에 시달린 주민들이 성격까지 거칠어지는 등 정서불안으로 정신질환자가 늘고있다고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밤잠마저 제대로 못 자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미 공군 사격장 소음공해 피해대책 추진위원회를 구성, 국방부·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내고 사격장을 이전해주든지 안전 및 생활대책, 해보상을 요구하며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 실력행사로 맞서겠다고 강경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사격장>
정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에 미 공군 사격장이 들어선 것은 6·25사변 이듬해부터.
사격장은 매향1리 부락 한가운데 38만평의 농지와 부락 앞 바다에 있는 2천여평 크기의 속칭 「농섬」주변 바다.
주위에 높은 산이 없고 앞바다와 인근마을에 안개 끼는 날이 드물어 항상 폭격연습이 가능해 태평양지역에선 최적의 사격장으로 알러졌다.
피해대책추진위원장 전만규씨(33)등 주민들에 따르면 각종 전·폭격기가 날아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기관포 사격·폭탄 투하연습을 하고 있으며 야간훈련 때는 조명탄을 발사, 밤새워 연습을 계속한다는 것.
이 때문에 매향 1·2·3리, 석천 3·4리, 이화 1·2·3리 등 8개 마을 6백 12가구 4천여 주민들은 훈련 시간이면 밤낮 없이 깜짝깜짝 놀라는 등 소음공해에 혼쭐이 나고 있다.

<주민피해>
『온 부락의 하늘 땅 바다의 일부가 온종일 폭음과 폭격음으로 뒤덮여 주민들의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읍니다.』
『인명피해와 물질적 피해도 중요하지만 TV도 볼 수 없는 문화적 생활의 침해와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시당하는 처사가 더 괴롭습니다.』
전 피해대책추진위원장은 『6살, 4살, 2살짜리 딸들이 잠을 못 자고 매일 이사가자고 졸라 괴롭다』며 『얼마나 폭음피해가 심하면 이러겠느냐』고 했다.
특히 전씨 등 40여 가구 어민들은 앞바다가 사격장이 돼 1년에 가구당 1백만원씩 주고 배를 빌어 사격장인 농섬을 피해 15km바다 밖으로 나가 어업을 하고 있으며 그밖의 어민들은 사격 없는 날만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등 피해가 엄청나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총알이 빗나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어 마음놓고 다니기조차 불안하다. 김정윤씨(50)는 지난 9월초 사격장근처 고추밭에 농약을 주던 중 5m 앞에 시험용 포탄이 떨어져 혼비백산했으며 김모씨(48)는 지붕 위에 발칸포 탄피가 떨어져 슬레이트 지붕이 파손되기도 했다.
3년 전 경기도 광주에서 낙농을 하다 이곳으로 이사온 이모씨(36·석천 3리)는 1년 동안 젖소 17마리 가운데 8마리가 낙태를 해 큰 피해를 보았으며 젖소들이 폭음에 놀라 담장을 뛰어넘어 울타리에 감전장치를 해 보호하고 있다는 것.
김점차씨(58)는 『20여년전 부락 김윤식씨 아들 형제 등 국민학교생 4명이 바닷가에서 주워온 불발폭탄을 분해하다 폭발해 몰살했다』고 끔찍했던 과거를 더듬었다.
백동현씨(41)는 『전투기가 저공비행으로 부락을 스쳐갈 때는 귀가 찢어질 듯해 땅에 주저앉을 정도』라며 『특히 20여년전 마을 한장수씨(56)의 부인 이영자씨(당시 30세)등이 바다에 굴을 따러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숨졌다』고 했다.
전 피해대책추진위원장은 이 같은 실정 때문에 생명위협, 청각 및 정서장애, 재산피해는 물론 폭음에 시달려 성격이 거칠어지고 신경질적이며 작은 일에도 화를 내는 등 성격에까지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따라 68년 이후 매향1리 1백 80가구에서 자살사건이 19건이나 발생, 16명이 숨졌는데 폭음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원인인 것 같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주민 요구>
이곳 주민들은 지난 7월 3일 8개리 6백 12가구가 연명 날인한 진정서를 작성, 소음공해 피해대책 추진위원회를 구성, 경기도·국방부·청와대에 냈다.
주민들은 진정서에서 ▲미 공군 사격장을 다른 지역으로 즉각 이전해 줄 것 ▲12월 26일 이내에 주민대표와 협의, 납득할 수 있도록 피해주민들의 생활근거지와 집단 이주책을 마련해 줄 것 ▲적절한 안전대책 및 주택의 방음시설 소음공해 피해보상금을 지급해 줄 것(12월 26일 이내) 이상 3개항 중 택일, 확실한 대책을 세울 때까지 폭음피해를 야기시키는 전·폭격기의 운항과 사격연습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또 사격장 이전이나 전·폭격기 운항, 사격연습 중단이 한미행정협정상 불가능할 경우 생활근거지 안전대책이 확실하게 협의될 때까지 주민 1인당 매월 10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해주고 신속한 해결을 위해 국방부 주관으로 정부의 관계부처·주민대표·미 공군사령부가 참여할 중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줄 것 등을 요청했다.

<당국 반응대책>
피해대책추진위원회로부터 진정을 밖은 국방부 당국은 미 공군 측에 통보, 지난 8월 17일 한미합동으로 구성된 13명의 소음 측정반이 현지와 미군 폭격 연습장 주변의 소음측정을 실시했다.
이 결과 소음도가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주거불능기준인 90∼110WECPNL(국제소음단위 약자)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뒷받침하듯 사격장 기지내 미군들과 한국인 경비원들은 청각 보호용 캡을 쓰고 근무하고있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달 15일과 3일 『미 측의 현장조사결과 사격장지역 주민들에게 사고위험과 동시에 일상생활에 자극적 요소가 되고 있음을 인정, 시정책을 검토 중』이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주민들은 3일 오후 7시 마을회관에서 전 위원장 등 8개 마을 대표 16명이 참석, 피해대책추진위원회를 열고 오는 12일까지 대안제시가 없을 때는 실력행사에 나서 사격을 저지키로 결의하고 이 사실을 국방부에 알렸다.

<화성=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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