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연설하려면 신사참배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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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의회 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공화당)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미국 의회 연설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3일 보도했다. 6월 말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고이즈미 총리는 방미 중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을 추진하고 있다.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려면 상.하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하이드 위원장은 4월 말 "고이즈미 총리의 합동회의 연설을 듣기 전에 그가 자진해서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에게 보냈다.

서한은 고이즈미 총리가 미 의회 연설 얼마 뒤인 8월 15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며 "(고이즈미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에게 경의를 표하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 직후 대국민 연설을 한 미국 의회의 체면이 손상된다"고 설명했다. 해스터트 하원의장은 하이드 위원장에게 아직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해전 등에 참전한 하이드 위원장은 지난해 가을에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아시아의 대화가 저해되는 것은 유감"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가토 료조(加藤良三) 주미 일본대사에게 보냈다.

한편 2차 대전 희생자 유족의 모임인 일본유족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자민당 간사장이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맞춰 준비 중인 정책 제언에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을 분사하는 안을 포함하기로 했다. 고가 회장은 이번 제언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이 중단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됐다고 지적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참배할 수 있도록 전몰자가 아닌 일부 영령을 분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기할 방침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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