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산층은 파국 막는 안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12일 한국사회학회와 중앙일보.광주일보 공동주최로 열린 ‘중산층 2차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이날 토론은 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NPOOL= 광주일보 위직량 기자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을 완화하고, 이를 조정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중산층이 무너지면 사회.정치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급히 중산층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는 약화되는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서 12일 열린 중산층 2차 포럼 '한국의 중산층, 개혁적인가'는 중산층이 사회통합을 위해 왜 중요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중앙일보와 한국사회학회는 중산층의 문화의식을 논의하는 중산층 3차 포럼을 9월에 부산에서 개최한다.

◆ 갈등 줄이는 절충 역할론=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때 전체 국민의 90%에 육박하던 '나는 중산층'이라는 응답이 외환위기 이후 각종 조사에서 70% 안팎으로 낮아지고 있다"며 "중산층은 보수든 진보든 간에 온건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좌우 대립에서 절충을 이끌어내는 계층"이라고 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도 "중산층은 사회계층 구조로 보면 말 그대로 '중간층'으로 계층끼리 대립하며 병목현상이 발생할 때 이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런 면에서 중산층은 파국을 막는 안전판"이라고 했다.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성장형 사회로 바뀌면서 중산층의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 "현실문제 해결을 더 원해"=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보다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실용주의 성향을 보인다"며 "따라서 고령화.양극화 등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중산층은 시대에 따라 이념보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정치 세력을 선택해 왔다. 김영태 목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세 차례 대선을 분석해 보면 중산층의 투표성향은 보수 후보와 개혁 후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고 했다. 조대엽 교수는 "중산층은 군부독재 시대에 산업화에 적응하는 보수 성향을 보이다가 87년 6월 항쟁 때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을 의미하는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대거 민주화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런 중산층의 특성을 '이념적 정체성이 없다'거나 '이중적인 정치 성향을 보인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봤다. 조경완 광주일보 논설위원은 "중산층에 개혁과 보수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며 "오히려 중산층의 모순된 입장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완충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조 위원은 "그래서 중산층을 회색지대라 한다면 이 회색은 기회주의가 아니라 통합의 색깔"이라고 덧붙였다.

◆ 국가 비전 제시해야=토론자들은 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경제의 몫이라면 중산층이 사회통합 세력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정치의 몫이라고 진단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정치부문 부장대우는 "중산층이 흔들리는 데는 정부가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에 큰 원인이 있다"며 "정체 상태에 도달한 우리 사회가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지를 제시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라고 했다.

중산층이 민주화에 기여했으나 지금은 역할이 별로 없다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윤상철 교수는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했던 중산층이 경제적 민주화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데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순흥 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산층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사회 전반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