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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건아, 나는 대한민국의 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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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국으로 귀화한 라건아(가운데)가 필리핀과의 8강전에서 골밑슛을 하고 있다. 그는 30점·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한국으로 귀화한 라건아(가운데)가 필리핀과의 8강전에서 골밑슛을 하고 있다. 그는 30점·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자카르타=연합뉴스]

“농구는 한 명이 아닌 5명이 하는 것이다.”

필리핀과 8강전 30점, 14리바운드 #NBA 스타 클락슨 묶고 승리 발판 #30일 이란과 결승 진출 다퉈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 가드 김선형(30·1m87㎝)은 필리핀과의 8강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5명이 똘똘 뭉친 한국이 ‘수퍼스타’ 조던 클락슨(26·1m96㎝) 한 명이 이끄는 필리핀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선형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한국은 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전에서 필리핀을 91-82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귀화 선수 라건아(30·미국명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활약이 돋보였다. 라건아는 이날 골밑을 지배하며 양 팀 최다인 30득점·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한국은 리바운드 개수에서도 45-40으로 필리핀에 앞섰다. 김선형과 허일영(33·포워드)이 각각 17득점을 올리며 지원사격했다. 전준범(27·포워드)은 후반 승부처에서 3점슛 3개(9점)를 꽂아넣었다. 40분 내내 뛰며 12리바운드(11득점)를 건져낸 이승현(26·포워드)의 헌신적인 플레이도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한국대표팀 허재 감독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필리핀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1일 중국과의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필리핀 대표팀에 합류한 클락슨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미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클락슨은 미국과 필리핀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 이번 대회가 필리핀 국가대표 데뷔 무대다.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슈팅가드로 활약 중인 클락슨은 지난 시즌 81경기에 출전해 평균 13.9점, 2.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연봉은 1250만 달러(약 142억원).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모든 선수 가운데 연봉이 가장 많다. 클락슨은 중국전에서 28득점을 올리며 필리핀의 공격을 이끌었다. 당초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필리핀은 비록 중국에 80-82로 졌지만 ‘우승 후보’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허재 대표팀 감독은 필리핀전을 앞두고 대인방어 대신 다양한 지역방어 전술을 준비했다. 끈질긴 협력수비로 클락슨을 괴롭힌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기 초반 클락슨이 공을 잡으면 한국 선수 2~3명이 에워싸며 공격을 저지했다. 클락슨은 1쿼터 6분 50초 만에 첫 득점을 올렸고, 전반에 4득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클락슨이 막히자 필리핀은 크리스티안 스탠하딩거(29·포워드)와 스탠리 프링글(31·가드)의 외곽슛으로 응수했다. 한국은 라건아와 허일영의 득점으로 1쿼터 한 때 17-7까지 앞섰지만, 필리핀의 외곽슛에 밀려 전반을 42-44로 뒤진 채 마쳤다. 라건아는 전반에만 17득점·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반에 침묵했던 클락슨은 후반 들어 지역방어가 느슨해지자 연속 득점을 올렸다. 한국은 3쿼터 한때 44-52, 8점 차까지 뒤졌다. 하지만 한국에는 라건아가 있었다. 라건아를 활용한 골밑 공격이 잇달아 성공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상승세를 탄 한국은 전준범과 김선형의 3점슛이 터지면서 필리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클락슨은 이날 24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예상만큼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허재 감독은 “클락슨을 대비해 우리가 준비한 지역방어가 잘 먹혔다”며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으면 무너질 수 있었는데 선수들이 똘똘 뭉쳐 이뤄낸 승리”라고 말했다. 라건아는 “공격 리바운드를 많이 잡았고 스피드와 조직력에서도 우리가 앞섰다. 클락슨은 혼자 싸웠고,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서 단단하게 경기를 펼쳤다”고 말했다.

올해 초 법무부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은 라건아는 빠르게 한국 대표팀에 녹아들면서 기존 멤버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포인트 가드 김선형과 호흡이 잘 맞는다. 김선형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라건아가 대표팀에 들어오면서 공수에서 확실히 파급 효과가 크다”고 했다. 라건아는 “김선형과 평소 대화를 많이 한다. 김선형이 찾아와 내게 요구하는 것도 있고 나도 그에게 요구할 때가 있다. 새로운 짝을 만난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은 30일 이란과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됐다. 이란은 이날 8강전에서 일본을 93-67로 물리쳤다. 한국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란을 물리치고 우승한 경험이 있다. 이란에는 NBA 출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33·2m18㎝)가 버티고 있다. 라건아는 “이란과 대결은 처음이다. 젊었을 때 하다디는 대단한 선수였다고 들었다”며 “내 장점인 스피드를 살려 리바운드 및 속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오늘의 아시안게임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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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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