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몇해던가…어언 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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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생이별했던 고향 옛집이 보인다.』
대청댐 수몰로 물 속에 잠겨 잊어버린 고향 옛터가 긴 가뭄 끝에 수위가 줄면서 8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이 몰려와 벅찬 향수에 젖어있다.
『물 속에 잠겼던 집터와 문전옥답, 정들었던 학교의 잔해가 물 속에서 떠올라 다시 마을이 생겨나는 기분이 듭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수몰민들. 지난17일 대청댐의 수위가 떨어져 옛 집터가 나타나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터전을 서글프게 등졌던 옛 추억의 아픔에 사로잡혀 있다.
마을서쪽 도당산밑에 기다랗게 자연부락을 이루어 5일마다 장이 서는 장날이면 인근 보은군 해남·해인· 가덕면 주민들과 충남 신탄진 등에서 몰려든 장꾼들로 성시를 이뤄왔다.
그러나 금강유역의 종합수자원개발에 따라 75년 대청다목적 댐이 착공, 80년12월 완공돼 문산리 마을이 물 속에 잠긴 것. 대청댐은 높이 72m, 길이4백95m에 총 저수량은 14억9천만t이며 만수위는 76m50㎝임.
이 댐건설에 따라 대역사의 현장만큼이나 대청댐은 많은 삶의 터전을 삼킨 애환을 담고있다.
문산리 마을을 비롯, 보은군 희남면 남대문리 등 충북도내에서만 65개 마을1천1백16만7천평이 수몰돼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뗘나야만 했기 때문.
문산리. 40여만평의 마을 가운데 90%가 물 속에 잠겼고 지금은 겨우 문의국교 뒤쪽 고지대에 위치해 수몰을 면했던 도당산과 불당골 4만5천여평 정도가 남아 문산리의 명맥을 이으며 주민들의 발길을 모아 향수를 달랜다.
8년전 대청댐 수몰로 고향마을을 뗘났던 사람은 모두 2백86가구 2천40명. 그중 절반은 고향을 멀리한 채 타향으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마을에서 1㎞정도 떨어진 인근 미천리로 터전을 옮겼다.
수몰되기 전 문산리 면소재지에 있던 면사무소를 비롯, 문의국민학교·보건지소·우체국 등은 새 터전에 말끔히 지어졌고 조선시대 문의현 관아로 객사로 사용됐던 문산관(유형문화재)은 원형을 보존, 현 면소재지인 미천리 마을뒤쪽으로 이전됐다.
당시 문산관도 수몰 될 위기를 맞았으나 정면3간 ,측면3간 맞배집 목조 건물로 세워져 조선중기 지방관아의 건축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돼 주민들의 강력한 보존주장으로 존폐위기를 넘긴 것.
문산리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터전을 잃은 서글픔 속에 8년 간의 긴 세월을 보냈다. 고향마을이 생각나면 도당산에 올라가 집이 있었던 물위의 옛 자리를 가리키고 추억을 더듬으며 막막한 댐물만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곤 했다.
그러던 중 4개월여 계속된 가뭄으로 대청댐 수위가 만수위 76·50m보다 12m정도나 떨어진 최저수위를 기록, 저수량이 크게 줄자 문의국민학교와 문의면사무소·담배창고자리, 집터와 문전옥답들이 옛 주인을 반기듯 가지런히 모습을 드러낸 것.
이에 이주 수몰민들은 너도나도 문산리 대청댐가로 몰려들어 추억의 얘기꽃을 피우며 다시 고향을 찾은 양 마음 설레고 있다.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80여년의 전통을 지닌 국민학교 1층 시멘트 슬라브골조. 이어 문산면사무소와 민가지붕이 하나둘씩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문의국민학교 28회 졸업생 (41년)인 이상진씨(61·현문의중교장)는 『지난 17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모교의 옛 모습을 다시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며 한동안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며『씨름선수로 출전, 천하장사가 돼 상을 받은 송아지를 끌고 널따란 운동장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돌았던 옛날 일이 절로 생각난다』고 추억에 잠겼다.
댐 물이 줄어 옛날에 살던 집터가 보인다는 소식에 달려왔다 는 박명규씨(55)는 『덩그렇게 솟아있는 마당 앞 우물의 원통과 25평정도의 기와집주춧돌이 옹기종기 놓여있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나고 살던 정든 집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 같다』며 감회에 젖었다.
물가운데 솟아오른 문의국교에서 2백m 떨어진 곳에는 면사무소자리와 담배수납창고바닥이 윤곽을 드러냈고 그 옆에는 마을회관과 보건지소 기초가 모습을 보이는 등 군데군데에서 옛 주인을 반기고있다.
학교 뒤 언덕배기에는 그 많던 감나무와 미류나무의 아름드리 밑둥치만 곳곳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감 따먹던 시절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들.
문산리 양조장 앞에 살았다는 김두연씨(56)는 『남들 집터는 보이는데 우리 집은 보이지 않아 아쉽다』며 『그래도 정성을 들여 말린 잎담배를 수납하러 갔던 담배 창고터를 보니 친구들과 막걸리 먹던 옛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문의면 번영회장 김신환씨(53)는 『고향마을이 물 속에 잠긴 후 새 터로 옮겨와 생활하고 있지만 지금은 관광지개발로 묶이는 바람에 소득기반이 없어 떠나온 주민들의 마음은 더없이 슬프다』고 수몰이주민의 애환과 어려운 생활을 털어놨다.
향수를 달래는 문산리마을 주민들. 비나 눈이 오면 또 언젠가는 정들었던 옛터가 물 속에 잠기고 말아 영영 볼 수 없을 것 아니냐며 발길을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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