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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만 가구에 164만 채 뿐 … 서울 아파트는 늘 부족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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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16면

[SPECIAL REPORT - 부동산 정책을 해부한다] 아파트의 경제학

아파트를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들썩이는 이유는 뭘까. ‘빠숑’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고소득층은 낡은 연립주택에 관심이 없다”며 “수도권 역세권의 10년 미만 대단지 아파트를 원하는 구매력이 있는 계층의 수요가 탄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소득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상위 20% 가계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늘어난 913만5000원에 달했다. 서울의 올해 가구수는 379만가구다. 상위 20%만 따져도 75만8000가구다. 서울의 아파트는 2016년 기준으로 164만채다. 이 가운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33만5000채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15만7000채를 합쳐도 50만 채가 안된다. 역세권 대단지 새 아파트는 더욱 더 드물다. 전국 가구수(1936만 가구)를 따지면 줄잡아 400만 가구에 달하는 연소득 1억원이 넘는 잠재 수요자가 는 셈이다.

가격 상승 요인 #연소득 1억 넘는 가구 서울만 75만 #“수도권 역세권 아파트 수요 탄탄” #공급 물량 감소 #서울 작년 순증 물량 2만1424가구 #강남권은 멸실분 빼면 ‘마이너스’ #30년 만에 22배 급등 #7500만원이던 은마 101㎡ 현재 16억 #서울 3.3㎡당 평균 2000만원 넘어 #각종 부동산 규제 #고가주택·다주택 소유자 과세 강화 #수급 고려 안해 가격 상승 이어져

강남·마포·용산·성동 아파트 50만 채

소득 증가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쓴 책 『대한민국 아파트 부의 지도』에서 “2004년 이후 13년간 서울 주택의 적정가격은 연소득의 8배 수준이었다”고 분석했다. 상위 20% 가구의 8년치 소득은 8억7648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 3구에서 시작된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 최근 다른 지역으로 번지면서 ‘갭 메우기’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소득 증가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과 노후주택 지역의 재개발 사업이 미뤄지면서 공급은 거의 끊겼다. 연말까지 헬리오시티 1만 가구를 비롯해 서울에만 2만4000가구의 입주 물량이 쏟아지지만 멸실분을 빼면 순공급량은 많지 않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서울 주택공급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순증 물량은 2만1424가구였다. 연 평균 4만~5만2000가구에 달했던 2011~2016년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강남권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멸실된 주택이 더 많은 ‘마이너스 공급’ 지역으로 바뀌었다. 규제 강화의 여파로 앞으로 3~4년간 ‘서울 역세권 대단지’ 아파트의 공급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여기에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서 공급은 더욱 줄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로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배인 7만4000명이 신규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4~8년간 매매할 수 없는 물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울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 지어진 충정로 유림아파트다. 4층 짜리 이 건물은 당시에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했고, 광복 후엔 호텔로 사용됐다. 대규모 단지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30년이 지난 뒤다. 1962년 서울 마포엔 6층짜리 아파트 10개 동이 들어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민주택이었다. 대한주택공사(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간한 『주택건설』에는 마포아파트에 입주한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해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으로 가겠다”고 말한 내용이 실려있다.

아파트가 ‘집’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강남이 개발되면서부터다. 1971년부터 4년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3786가구가 들어선 반포주공아파트가 강남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당초 이름은 ‘남서울 아파트’였다. 논·밭뿐인 압구정·잠원보다 남대문과 서울 시청이 가깝다는 게 홍보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반포주공을 시작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잠실 주공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75년 5만8000채던 서울 시내 아파트는 현재 164만 채로 증가했다. 현재 3.3㎡당 평균 매매가는 2000만원을 넘는다.

강남 집값은 30년 가까이 가파르게 올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988년 7500만원이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는 현재 16억5000만원으로 22배 뛰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를 따라 기업이 들어서고 명문 학군, 상권과 교통 등 뛰어난 주거환경이 갖춰지면서 강남 아파트의 몸값을 높였다.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 『강남만들기, 강남따라하기와 한국의 도시 이데올로기』에서 “강남이 도시 중산층의 공간에서 상류층으로 바뀌면서 주민들의 지위가 스스로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업적적 지위’에서 금수저들만 진입할 수 있는 ‘귀속적 지위’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정부, 전월세 가격 안정에 무게

금수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정부는 서울 아파트를 수요공급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일부 세력이 투기와 담합으로 가격을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이끄는 중심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다.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도시연구소를 거쳐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일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과제비서관을 맡아 ‘8·31 부동산종합대책’과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주도했다.

그의 생각은 2011년 쓴 책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하이에나가 우글거리는 정글’이고 ‘모두가 내 집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과도한 급등과 폭락으로 정보력이 약한 서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가 거품을 제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임대소득세를 통해 주택 소유에 따른 혜택을 환수한다면 과도한 주택 보유에 대한 욕구가 떨어지고 시장 원리에 입각한 주택의 공급과 분배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같은 입장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재건축 규제(2003년 5·23대책), 재건축 소형평형의무비율 도입(9·5대책), 개발이익환수제, 종합부동산세 도입(10·29대책), 판교신도시 분양(2005년 2·17대책), 보유세 인상(5·4대책), 2주택자 양도세 중과(8·31대책) 등을 잇따라 시행했지만 아파트값 급등을 잡지 못했다. 당시의 실패를 거울삼아 세제 강화와 재건축 규제뿐 아니라 대출한도 강화를 포함한 금융·청약 제도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규제 방안을 내놓은 게 8·2 대책이다. 대책 발표 다음날 열린 기자간담회에 나선 김 수석은 “내년 봄 이사철까지 (다주택자들에게)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든 정부는 부동산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을 실제로 추진하는 사람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다. 그는 8·2 대책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번 대책은 집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파시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정책은 고가주택·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중산층의 아파트 소유에 제동을 거는 한편,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해 안정적인 전월세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월세가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매매 가격도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급을 무시한 정부의 기대는 또다시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여의도·용산 개발계획과 경전철 사업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엇박자를 냈다. 김 장관이 서둘러 “실질적으로 진행하려면 국토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용산과 여의도는 물론 서울 전역으로 집값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다. 이상우 연구원은 “서울 아파트의 주요 구매층인 중산층 소득이 오르고 있어 이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분양가 상한제로 로또 청약 … 시세차익 노려 ‘위장결혼’까지

기존 주택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 신규 분양시장에 돈이 몰린다. 특히 역세권 브랜드 아파트가 주변 시세보다 싸게 분양되면서 ‘로또 아파트’ 열풍이 나타났다. 역설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가 청약과열의 불씨가 됐다. 올해 3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자이는 3.3㎡당 주변 시세보다 1000만원 가량 낮은 평균 4160만원에 분양했다. 당첨만 되면 3~4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거란 기대감에 3만 명 넘게 몰리며 25대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바람에 위장결혼까지 불사하는 경우가 적잖이 발생했다. 최근엔 서울·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위장결혼 등으로 분양권을 사고 판 1000여 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분양권에 당첨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해 자녀를 둔 이혼자들과 위장 결혼을 했다.

김창우·염지현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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