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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 사라진 메마른 시장 … 양도세 줄이려 ‘업계약’ 성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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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15면

[SPECIAL REPORT - 부동산 정책을 해부한다] 현장에 가보니

“강남만 오른 게 아니에요. 이곳도 99㎡(약 30평) 아파트 사려면 10억원은 줘야해요. 이조차도 없어서 2~3일 매물 찾는 작업(?)이 필요해요”

호가만 뛰고 #한두 채만 팔려도 1억 넘게 껑충 #흑석동 등 비투기지역 집값도 급등 #갭투자 줄어 #전세가 그대로인데 매매가만 올라 #강북지역 아파트도 상승세 이어져

이달 초 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에서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최근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전용면적 59㎡ 흑석한강푸르지오는 두 달 새 호가만 5000만원 올라 9억2000만원이다. 김 사장은 “최근 집주인들이 물건을 거둬들인 뒤 잇달아 호가를 올리고 있다”며 “고객 발길마저 뚝 끊겼다”고 말했다. 메마른 시장(thin market)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메마른 시장에선 편법과 불법, 기현상이 빚어지기 십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집주인들 매물 거둬들여=이달 10일 오후 4시 서울 용산역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푸르지오써밋을 찾았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몰린 1층 상가엔 드나드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최모 사장은 “요즘 정부가 용산구 중개업소 대상으로 불법거래를 단속해 휴가를 가거나 임시휴업을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 매물을 묻는 전화는 오는데 팔 물건이 없다”고 덧붙였다. 용산구는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통째 재개발 등 여의도와 용산 개발 계획을 발표한 뒤 투자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0년 이상된 용산구 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59㎡ 매물이 7억5000만원에 나왔다. 지난해 실거래가보다 최소 2억원 이상 웃돈이 붙었다.

입지나 학군이 뛰어난 강남구 대치동도 매물이 마르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에 사는 이모씨도 매물을 거둬들였다. 그는 “요즘 인근 공인중개업체에서 얼마에 팔고 싶은지 묻는 전화가 쏟아진다”며 “지금이라도 원하는 가격에 팔지 아니면 더 오를 때까지 버틸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봉주 전 하나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거래량이 줄어도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두 명이 웃돈을 줘서라도 투자에 나서면 급등한 호가가 실거래가 된다. 이는 다시 호가 상승을 부른다. 메마른 시장의 악순환이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32% 올랐다. 올해 4월 다주택 양도세 중과 시행을 앞두고 3월부터 하락했던 집값이 6월말 보유세 개편안이 드러나면서 반등했다. 올 3월에만 3만5000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4~8년간 해당 주택을 매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재건축·재개발 요건 강화와 맞물려 서울 시내에는 아파트 공급이 아예 말랐다.

새 아파트 인기로 지난 6월 서울 강동구 고덕자이 청약경쟁률은 31.1대 1에 달했다. [중앙포토]

새 아파트 인기로 지난 6월 서울 강동구 고덕자이 청약경쟁률은 31.1대 1에 달했다. [중앙포토]

◆매매가 올라 갭투자 비용 증가=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게 갭투자다. 2015년 강북에서 처음으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하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서면서 갭투자가 인기를 끌었다. 전세를 끼면 비교적 저렴한 1억~2억원에 아파트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가 여러 채를 구입한 뒤 되파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차익을 거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가율은 67.3%로 1년 전보다 4%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특이한 점은 전세가는 그대로인데 매매 가격이 크게 올랐다. 특히 서울 강북에서 ‘갭투자 성지’로 손꼽는 성북구는 최근 전세가율 80%대가 깨졌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9단지 래미안 84㎡(전용면적)는 전세가격보다 2억3000만원 비싼 7억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가격 차이는 1억원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인근에서 부동산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 대표는 “매매가가 1억원 이상 뛰는 동안 전세가는 1000만~2000만원 오르는 데 그쳐 전세가율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올 들어 성북구를 포함한 강북지역 아파트 가격이 강남권에 비해 덜 올랐다는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도세 등 세금 부담으로 당장 집을 팔지 못하는 집주인들은 전·월세 가격을 추가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전세가율이 낮아지면 매매가도 자연스럽게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매물이 마른 상황에서 높아진 호가로 실거래가 이뤄지면서 집값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집값이 오르면 매수세가 전세 수요로 돌아서면서 전세값이 오르고, 높아진 전세값이 다시 매매가를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1~2년 내 입주물량 증가로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서울 송파구에 1만 가구에 이르는 헬리오시티의 전세물량이 쏟아지면 주변 단지 전세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 조장하는 ‘허위신고’=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요즘 ‘업계약’이 적잖이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업계약은 다운계약의 반대로 매매가격을 올려 신고하는 행위다. 그동안 다운 계약이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가격을 올려 신고하는 업계약이 늘었다. 지난해 391건으로 1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매가격을 올려 신고하면 취득세는 올라가지만 양도세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정부가 올 들어 실시한 양도세 중과가 낳은 편법이다.

자전거래 의혹도 커졌다. 자전거래는 매도자가 가격을 부풀려 실거래가 신고를 한 뒤 계약을 취소하는 행위다.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의 허점을 노렸다. 주택을 사고팔 때 거래 당사자나 공인중개사는 60일 이내에 해당 시군구청에 실거래가를 신고해야 한다. 신고 취소는 의무가 아니다. 취소할 때까진 허위 가격이 실거래가 시스템에 남아있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다만 국토교통부가 전국적으로 자전거래 단속에 나섰지만 적발된 사례는 없다. 국토부 측은 거래 가격을 크게 올리면 거래가 줄기 때문에 자전거래는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입장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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