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릭스럽다' '솔레발' "휴교는 왜 했나"…허세태풍에 허탈했던 시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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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호남과 충청 등 한반도를 관통했다. 이날 서울 시내에는 짙은 먹구름이 잔뜩 끼고 부슬비가 내리는 정도였다. [연합뉴스]

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호남과 충청 등 한반도를 관통했다. 이날 서울 시내에는 짙은 먹구름이 잔뜩 끼고 부슬비가 내리는 정도였다. [연합뉴스]

제19호 태풍 솔릭이 북상하기 전 기상청은 일기 예보들을 잇따라 내놨다. 그러나 정작 솔릭은 24일 오전 11시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고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잔뜩 긴장했던 시민들은 조용히 빠져나간 태풍에 안도하면서도 허탈한 일상을 보냈다. 솔릭을 조롱하듯 빗댄 표현도 시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역대급이라더니…" 조용히 빠져나간 태풍에 #시민들 용두사미 의미하는 뜻 '솔릭스럽다' #'설레발'이 심하다는 뜻 '솔레발' 신조어 유행

SNS 상에서 겁만 잔뜩 주다 조용히 지나간 태풍 솔릭에 대해 '솔릭'과 '설레발'을 합성한 '솔레발'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SNS 상에서 겁만 잔뜩 주다 조용히 지나간 태풍 솔릭에 대해 '솔릭'과 '설레발'을 합성한 '솔레발'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솔릭스럽다”는 말이 등장했다. 시작 전에 요란한 예고와 달리, 막상 뚜껑을 열면 아무 것도 아니어서 허무하게 만드는 상황을 태풍 ‘솔릭’에 빗대 만든 신조어다. 네티즌들은 ‘몹시 서두르고 부산하다’는 의미의 ‘설레발’이라는 단어도 ‘솔레발’로 바꿔 쓰고 있다. 등장하기 전에 겁만 잔뜩 주고 조용히 떠나는 모습을 '솔릭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기예보와 달랐던 솔릭의 경로에 대해서는 '솔라이스'라고 비꼬았다. 기상청 예보에는 솔릭이 서울·경기도 등 수도권을 관통할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작 태풍 경로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강원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하자 솔릭의 이름에 골프 용어인 ‘슬라이스’에 합성해 '솔라이스'라 비꼰 것이다. 골프에서 슬라이스란 공을 우측으로 꺾어 쳐서 빗맞은 타구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을 말한다.

당초 솔릭의 위력을 ‘역대급’ '수도권 관통'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예보한 기상청에 대해 분노하는 시민도 상당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솔릭 피해가 예고됐던 22일 이후부터 ‘기상청을 폐지하라’ ‘기상청장을 파면하라’ 등의 격앙된 내용의 청원이 40건(24일 오후 6시 기준) 이상 올라와 있다.

23일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는 태풍 '솔릭'과 그 뒤를 이어 북상 중인 태풍 '시마론'의 쌍태풍의 모습이 보인다. 기상청은 솔릭에 대해 '역대급 규모' '수도권 관통' 등의 표현을 써가며 큰 피해를 보일 것으로 예고한 바 있다.[뉴시스]

23일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는 태풍 '솔릭'과 그 뒤를 이어 북상 중인 태풍 '시마론'의 쌍태풍의 모습이 보인다. 기상청은 솔릭에 대해 '역대급 규모' '수도권 관통' 등의 표현을 써가며 큰 피해를 보일 것으로 예고한 바 있다.[뉴시스]

'기상청을 폐지하라'는 청원에는 ‘한국으로 접근하는 태풍의 경로와 위력에 대해 한국 기상청보다 일본 기상청 예보가 더 정확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면서 ‘기상청장은 이에 책임감을 느끼고 사퇴해야 한다’는 댓글도 달렸다. 또 솔릭에 대해 보도한 기사에도 기상청을 조롱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네티즌들은 기상청을 ‘오보청’ ‘구라청’이라 표현하고, ‘일기 예보’는 ‘일기 예능’이라 비꼬았다.
7000여개 학교가 일제히 휴교를 하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기상청,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회자됐다. 기상청이 잔뜩 겁을 준 덕분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직장맘들은 종일 집에 있는 자녀들 때문에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초등생 자녀를 키우는 김윤희(44·서울)씨는 "아이들이 밥은 제때 챙겨먹는지, PC방을 간 건 아닌지 수시로 전화해야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예보가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철저하게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일기를 예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는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발표가 있어서 정부 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장은희(대구일보) 기자 jang.eunhe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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