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속에서도 드러난 「학살각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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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청문회 이틀 결산
80년의 강제해직·통폐합 등 언론학살은 정권을 장악한 5·17세력의 정권유지를 위한 면밀한 시나리오에서 추진했을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21, 22일의 언론청문회는 언론통폐합 등이 당시 군부를 사실상 통제하면서 계엄을 끌고 나갔던 보안사에 의해 주도됐음을 확실히 밝혀냈으며 이에 따라 권정달정보처장과 이상재언론대책반장이 언론대책의 한팀이 되어 구상했고 이를 허문도청와대정무비서관과 이광표문공장관이 정책화하여 다시 권-이보안사팀과 이장관의 문공부를 통해 집행해 낸 것으로 드러나 이들이 언론학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번 청문회에서 나온 증인들의 증언내용을 정리해보면 80년 언론인해직은 권정달씨가 80년4월 언론대책반이란 것을 만들어 대책반 책임자인 이상재준위를 통해 추진했으며 이씨가 보고한 해직대상자명단을 권씨가 당시 이광표문공장관에게 전달했고 이장관은 이를 다시 각 언론사에 전달해 각 언론사는 일괄사표를 받은 뒤 선별 처리하는 방식으로 보안사의 압력을 수용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이철의원 (무소속)이 제시한 「언론계 자체정화계획」이란 국보위 문공분과위 문서에서도 나왔듯이 소기의 성과가 없을 시에는 경영주를 포함해 합수단에서 조사 처리한다는 등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도저히 보안사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도록 하는 협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통폐합의 경우는 아이디어는 허문도씨가 냈고 허씨와 권정달씨가 수차에 걸친 실패 끝에 전두환대통령으로부터 재가를 받았고 이광표문공장관이 결재서류를 당시 노태우사령관에게 전달, 보안사가 각 언론사사장을 보안사로 불러 포기 각서를 받음으로써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역시 장기봉전신아일보사장 등 당시의 피해자들이 밝혔듯이 보안사 쪽방에서 포기 각서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으며 따라서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가 장장33시간에 걸친 질의응답을 통해 많은 것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물러야할 의혹들은 많이 남아있다.
스스로 통폐합을 주도했다던 허문도씨가 집행에는 간여한바 없다고 했으나 당시 보안사정보처장인 한용원씨는 이상재씨가 허씨와 연결되어 통폐합이 집행되었다고 이를 반박하고 나선 점, 이상재씨는 한씨가 통폐합집행에 참여했다고 했으나 한씨는 전적으로 이씨가 했다고 주장한 점 등 증인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몇가지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과 당시 권정달씨의 역할규명 등이 숙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앞으로 두고두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두어가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은 다른 문제에 앞서 규명되어야만 또 다른 문제를 낳는 악순환을 줄일 수 있다.
우선 해직기자명단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있어야한다.
이상재씨는 자기가 권정달처장에게 보고한 명단은 90명이라고 밝혔으나 이광표씨는 2백여명의 명단을 권처장으로부터 받았다고 했고 이철의원이 제시한 「언론인 정화결과」라는 문공부 문서에는 명단수록자가 3백36명으로 되어있다.
또 이의원의 자료에는 명단수록자중 38명의 해직이 보류되고 6백35명의 자체 정화자를 포함, 총 8백95명이 해직됐다고 되어 있어 그 동안 문공부가 밝힌 7백17명과는 차이가 난다.
언론통폐합 문제에 있어서는 언론내부의 협조가 있었는가가 밝혀져야 한다.
22일의 청문회에서 장기봉전신아일보사장은 유학성씨가 언론사 사주들과 만찬을 하는 도중 문제언론에 대한 조치를 구하는 발언이 발행인 입에서 나왔다고 했고 또 이병찬 당시 검열단장은 이상재씨를 만나기 위해 많은 언론인들이 방문했다고 말함으로써 언론 내부에 대한 오해의 눈초리가 몰리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인 출신 인사들의 반언론적 행태에 대한 사실규명도 있어야 할 것 같다.
통폐합을 주도한 허문도 증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광표전문공장관도 시종 언론주무장관으로 자기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군부세력에 질질 끌려 다니며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던 (?) 사실이 밝혀졌으며 문공차관시절에는 계엄위원으로 있으면서 79년 12월 『검열통제를 완화할 경우 정국안정에 큰 영향을 준다』며 강력한 언론통제를 주장했고 80년 12월에는 언론인과의 잦은 접촉, 소관부처별 책임제 실시 등 언론통제 및 조정에 적극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는 것이 박관용의원 (민주)의 힐책에 의해 드러났다.
이밖에 또 한가지 의문이 되는 점은 허문도-이상재팀의 위증이다.
허씨는 국보위 문공분과위의 문서를 『기억에 없다』고 했으며 이씨는 국정 감사때 『해직에 관계없다』고 했다가 21일 「문제기자」 명단작성을 인정했고 22일 다시 『결과적으로 해직과 통폐합에 책임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허-이씨가 책임을 분담하고 당시 보안사 언론대책반 요원들과 사전에 「입을 맞춘」 흔적이 엿보이는 것이다.
만약 이점이 밝혀진다면 허·이씨는 위증뿐 아니라 사실은폐의 책임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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