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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도운 前비서관, 한달새 '수상한 통화' 130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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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1심 선고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ㆍ프리큐레이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1심 선고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ㆍ프리큐레이션]

14일 무죄가 선고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 성폭력 재판에선 안 전 지사 주변인들 사이의 의견이 갈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수사ㆍ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김지은(33)씨의 주장과 뜻을 같이 하는 진술을 했지만, 1심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안 전 지사에게 유리한 정황을 제공해준 사람도 있었다.

최근 중앙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다. 이중에서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몇몇 인물이 있다. 바로 안 전 지사의 전·현직 보좌진이다.

A씨는 김씨에게 유리한 진술, 재판부는 세부 사항 다르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이 중 하나가 A씨다. 그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 이후 김씨에게서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나를 안아라, 안으니까 침대로 데려갔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서 증언했다. 그의 증언 내용엔 지난해 9월 스위스 출장 당시 김씨에게서 "안 전 지사가 나를 호텔방으로 부른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도 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놨다는 것은 당시 김씨의 고민이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A씨는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김씨로부터 피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더구나 지난해 8월 강남 호텔에서의 성폭력 피해를 알렸다는 김씨의 말과 이 부분은 듣지 못했다는 대한 A씨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와 A씨가 지난해 8월 초중순 경 다수 통화한 내역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과연 A씨가 본인의 진술 및 증언 내용대로 당시 김씨로부터 구체적인 피해사실에 대해 호소하는 내용을 직접 들은 것인지 의심이 들고, 이에 관한 증언 부분을 그대로 믿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스위스 출장과 관련한 김씨와 A씨의 증언이 실제 통화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점을 들어 A씨의 증언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체적으로 A씨는 김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지만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김씨가 고소하게 된 데 큰 역할

판결문에서 여러 번 이름이 나오는 B씨는 안 전 지사의 보좌진 출신으로 김씨를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로 보인다. B씨는 당시 안 전 지사의 품을 떠나 현직 국회의원 비서 신분이었다. 그는 올해 2월 김씨에게서 마포 오피스텔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나타난다.

재판부는 B씨를 “김씨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하고 고소에 이르는 데 핵심적으로 관여한 인물”이라고 봤다. 올해 1~3월 김씨와 B씨가 안 전 지사에 대한 고소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B씨가 김씨에게 “텔레그램(메신저)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봐”라며 자료 수집을 도왔다는 점 등이 근거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무죄와 관련해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무죄와 관련해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재판부는 B씨의 증언도 믿기 어렵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와 B씨는 올해 2월 1일부터 3월 5일까지 130번의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재판부가 “이렇게 많은 통화 과정에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는데 B씨는 “안 전 지사에 대한 업적 정리 자료(Data Base) 시스템 개선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씨가 전산 분야에 전문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충남도청에선 관련 전문가를 고용한 상태였다”며 “심야에 통화가 주로 이뤄진 것으로 봤을 땐 B씨 말에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무죄와 관련해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무죄와 관련해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C씨와의 문자메시지는 김씨에게 불리한 증거로

안 전 지사의 또 다른 보좌진 C씨는 김씨에게 불리한 정황에 등장한다. C씨는 지난해 8월 당시 김씨와 차에 단 둘이 타고 이동할 때 김씨의 등과 어깨를 툭툭 치는 행동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여자 수행비서하고 차에 단둘이 타니 좋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씨는 안 전 지사의 비서실장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고, C씨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불쾌함을 표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C씨는 이에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하죠”라고 답신을 보냈다.

이 같은 사실은 재판부가 김씨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리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김씨의 성적 자존감과 주체성이 결코 낮다고 보기 어렵다”며 “안 전 지사에겐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더라도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선택하여 행사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더구나 김씨는 지난해 8월 중순 안 전 지사가 강남 호텔에 숙박하던 당시 C씨에게 "방을 근처에 잡아야 할 것 같다. (안 전 지사가 묵는) 호텔이 거의 만실"이라는 것을 문자메시지로 알렸다. 하지만 판결문엔 당시 호텔 객실 332개 중 105개가 비어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김씨는 이 호텔에서 안 전 지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만실이 아니었는데도 김씨가 C씨에게 만실이라는 정보를 준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김씨가 당시 C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이 밖에 지난해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장 당시 요트에서 안 전 지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당시 수행원인 D씨와 E씨가 모두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여성단체들은 1심 판결 반발 

이 판결에 대해 여성 권익 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로스쿨 학생 모임 중 하나인 전국법전원젠더법학회연합회는 19일 “피해자의 강한 저항이 있었느냐를 유무죄의 근거로 삼지 않는 기존 대법원 판례보다 후퇴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20일 항소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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