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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무역전쟁 하는 미국 ‘검투사’들, 이번에도 자중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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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단이 오는 22~23일 미국 워싱턴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을 멈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류허(劉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중국 대표단이 무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이후 다섯 번째 협상이다.

22일 워싱턴서 미·중 무역협상 재개 #온건파 므누신·커들로 협상안 마련 #라이트하이저 “협상력 제고 우선” #중국 측, 온건파 접촉해 틈새 공략

서로의 수출품 3600억 달러(약 404조원) 규모를 겨냥한, 사상 최대 관세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휘하고 있다. 두 정상이 오는 11월 만나 담판을 지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번 협상에서 양국 참모진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 검투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협상의 관전 포인트가 뚜렷해진다. 특히 미국 진영 검투사들은 중국, 그리고 무역에 대한 시각이 달라 자중지란(自中之亂) 위험까지 있다. 전략이 많이 노출되지 않은 중국 협상팀과 대비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협상파다. 반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보호무역 성향이 강하다. 므누신 장관과 커들로 위원장은 중국과의 협상에서 제시할 미국 측 요구사항을 정리해 두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데 반해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협상에 반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 보도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엄포를 놓은 추가 관세를 모두 실행해야 미국의 협상력이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미·중 양국은 7월 6일 서로의 수출품 340억 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협상 이틀째 날인 23일은 미국이 새로운 160억 달러어치 중국산 상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실행을 예고한 날이다. 미국은 이르면 9월 또 다른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매길 예정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모든 관세 폭탄을 터뜨린 뒤 미국의 협상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미국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두 진영 중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했으며, 타협안이 테이블에 올라오면 그때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데 대해서도 입장이 갈린다. 므누신 장관과 커들로 위원장은 관세에 관해 ‘온건파’로 분류된다. 관세 폭탄 외 방법으로도 미국의 요구 사항을 관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폭탄의 뇌관을 쥐고 있는 주무 부처인 USTR의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나바로 위원장은 ‘관세 강경파’이다. 관세 전쟁을 통해 중국을 굴복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바로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최고 4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 초안을 작성한 사실이 미국 정치매체 악시오스 보도로 알려졌다.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나바로의 ‘관세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점의 차이는 이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에서 나온다. 므누신 장관은 대형 금융회사 골드먼삭스 출신으로, 여러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무역협상 경험은 거의 없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커들로 위원장은 본능적인 자유무역주의자다. 이에 반해 경제학자 출신 나바로 위원장은 특히 중국의 무역 관행에 대해 강경하다. UC어바인 경제학 및 공공정책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Death by China) 』 『 웅크린 호랑이』 등 저서를 통해 중국의 부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펼쳤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워싱턴을 무대로 활동한 통상 변호사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2000년대 초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지배적인 무역 국가로 떠오를 것이며, 미국 내 모든 제조업 일자리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협상팀의 불협화음은 지난 5월 3~4일 베이징에서 열린 무역협상에서 터져 나왔다. 협상파인 므누신 장관이 중국 측 류 부총리와 단독으로 회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바로 위원장이 므누신에게 고성과 욕설을 퍼부었다고 CNN 등은 전했다. 이어 5월 17~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협상에서 므누신 장관이 협상을 주도하면서 그에게 힘이 실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므누신 장관은 직후 방송에 출연해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번복하면서 자중지란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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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협상팀의 빈틈을 중국이 놓칠 리 없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협상팀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고한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나바로 위원장, 그리고 비교적 우호적인 커들로 위원장, 므누신 장관, 윌버 로스 상무 장관 진영으로 트럼프 참모진이 나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전했다. 수개월 동안 므누신 장관을 공략했으며, 그 결과 류 부총리와 단독 회담을 주선했다가 ‘므누신-나바로’ 대첩이 일어났다.

중국 협상팀 수장인 류 부총리는 시 주석의 책사이자 ‘경제 브레인’으로 통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무역협상 전담부서인 중앙재경위원회를 계속해서 지휘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 가운데 보기 드문 하버드대(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유학파여서 시장 경제에 관한 이해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류 부총리의 오른팔은 랴오민(廖岷) 재정부 부부장이다. 무역전쟁 진행 중에 중앙재경위 판공실 부주임에서 전격 승진했다. 베이징대 졸업 후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중국은행감독위원회를 거치며 국제 금융 및 경제 정책 전문가로 경험을 쌓았다. 로이터와 블룸버그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영어가 유창하다. 왕셔우원(王受文) 상무부 부부장은 국제무역협상 부대표를 맡으며 중국의 ‘입’ 역할을 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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