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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어 더 또렷한 사람의 공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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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24면

네 번째 개인전 연 독일의 사진 거장 칸디다 회퍼

‘Elbphilharmonie Hamburg Herzog & de Meuron Hamburg II 2016’, C-print, 184 x 174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Elbphilharmonie Hamburg Herzog & de Meuron Hamburg II 2016’, C-print, 184 x 174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동시대 사진 거장인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Candida H<00F6>fer·74)의 건축 내부 풍경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게 마련인 도서관·미술관·극장·오페라하우스의 실내가 텅 비어 있으니, 그 장엄한 대칭의 풍경이 기묘하고 숙연하다. 사람이 없으니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기둥과 천장, 벽화의 색채, 책장의 배열, 열을 지은 극장 좌석들의 반복과 변주 등. 생각해보니 모두 인간이 창조하고 인간의 문화와 지식이 축적된 것들이다. 회퍼는 그러한 인간의 공간을 인간 없이 촬영함으로써 인간의 존재를 우회적으로, 상징적으로, 지각하게 한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26일까지 개인전 ‘깨우침의 공간들(Spaces of Enlightenment)’을 열고 있는 그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작가는 지난 몇십 년간 도서관·미술관·극장 등을 찍으며 몇 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먼저,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 이는 사람을 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원래 설치된 조명 외에 추가로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이 찍힌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진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원래 개관 전이나 폐관 후 이용자가 없을 때 찍곤 하는데, 이 도서관 작업을 할 때는 그 시간대에 빛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개방시간 중에 촬영할 수밖에 없었죠.”

 그의 작품에는 오랜 역사를 축적한, 또는 작가의 말대로 “새로운 역사로 채워질”, 학문과 예술의 건축공간들이 자신의 존재를 거대하게 그리고 극적 연출이 배제된 자연스러운 빛 속에서 디테일까지 드러낸다. “우리는 공간에 사람이 없을 때, 그 공간을 더 잘 느끼게 됩니다. 그게 제 사진에 사람이 없는 또 다른 이유죠.”

 그의 오스트리아 수도원 도서관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은 서가를 꽉 채운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책들을 축복하는 듯한 바로크 천장화와 서가가 만나는 스펙터클에 문득 숭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심플한 흰색 직사각형의 반복인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의 고요한 서가를 보면서는 이곳에서 작가가 개념미술과 유형학적 사진의 대가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에게 배운 것이 무엇일지 차분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이 사진들은 회퍼 자신이 ‘공간의 초상’이라고 했듯, 어딘가 사람의 초상사진을 닮았다. 언뜻 무표정하지만, 자연스러운 빛에 섬세하게 노출된 이목구비로 각자의 성격과 살아온 세월을 드러내는 초상사진 말이다.

‘Van Abbemuseum Eindhoven VI 2003’, C-print, 103.8 x 88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Van Abbemuseum Eindhoven VI 2003’, C-print, 103.8 x 88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흥미롭게도 회퍼의 주요 초기작은 사람들을 찍은 사진 연작이었다. 독일로 이주한 터키인들과 터키에 살고 있는 터키인들을 집· 상점·공원 등 그들의 생활공간을 포착했다. “이 연작을 하며 사람들이 공간에 어떻게 반응하고 또 공간을 변형시키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쾰른에 있는 터키 이주민의 식료품점은 독일 상점의 큰 틀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안의 장식과 상품 배열은 독일식이 아닌 터키식이었어요. 인간이 공간과 갖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건 공간에 사람들이 없을 때 더 분명하게 보이더군요.” 그가 1980년대 들어 공공 공간의 실내를 찍는 것으로 작품 스타일을 바꾼 이유다.

사람 없는 공공 공간의 사진으로 진화한 또 다른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터키 사람들은 내 작업에 호의적이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반면에 내 예술은 그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기반성이 문득 일어났다. 단지 내 예술을 위해 그들의 사적 공간에 침입해 그들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독일에 사는 독일 사람들 연작을 시작하며 그간 품어온 회의가 폭발했고, 결국 사람이 나오는 연작을 그만두었다.”  
공간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느 공간을 찍을 만하다고 결정하면, 그곳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와 리서치를 한다. 처음 장소를 볼 때부터 실제로 찍을 때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공간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감정적인 것이다. 내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감정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숭고한 느낌이지만, 감정은 오히려 절제되고 초연한 인상이다.  
“감정적 유대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선택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감정과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이건 사람과 일할 때와도 비슷하다. 일을 시작하려면 그 사람과 공감대가 있어야 하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면 그건 철저히 일이다. 마찬가지로 공간도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프로페셔널한 관계여야 한다. 최종 작품을 프린트하기 전에 테스트 사진을 인쇄해 보며 색상의 강도를 정하는데, 그때 나는 (색조가) 담담한 쪽을 선호한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다.”  
작품을 크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진이 크면 세부 디테일을 보며 거기 빠져들고 동시에 그 디테일이 모여 형성하는 전체적 공간 구조를 볼 수 있다. 결정적인 계기를 말하자면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도서관 갤러리에서 아래에 있는 홀을 내려다볼 때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내가 어시스턴트에게 했던 말은 ‘이 사진은 크게 만들어야겠어’였다(2004년 작인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사진은 회퍼의 작품세계를 함축하는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작품이 다 대형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공간들이 더 큰 사이즈를 필요로 할 뿐이다.”  
주로 유럽의 공간들을 다루는 것 같다. 한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 공간을 다뤄 본 적은.  
“ 유럽은 아름다운 공간이 많고, 사는 곳에서 가까우며, 촬영을 준비하기에 용이하다.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해 보았는데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들을 사진 찍을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글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사진 박상문 국장·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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