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닥 텐트생활 … 더위에 물 부족 '2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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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막사로 가득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황새울 들판에서 9일 군인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울타리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위대가 휘두른 죽봉과 각목에 동료 병사들이 맞을 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다고 (장병에게) 폭력을 휘둘러선 안 됩니다."

9일 오후 평택 미군기지 예정지. 국방부의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3일 이곳에 투입된 수도군단 예하 102여단 수색중대 박정한(21) 일병은 이렇게 말했다. 장병들은 지쳐 있었다. 이들은 시위대의 일방적 폭력 행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작전 책임자인 박종달 수도군단장은 "비무장인 병사들은 시위대의 폭행에 무력감을 느끼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장병들의 생활도 엉망이다. 건물 없이 훤히 트인 논바닥이 작전지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가 많이 내려 논바닥은 질퍽질퍽하다. 박 일병은 배치 5일 만인 7일에야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잠자리는 논 위에 친 2~4인용 텐트속에 비닐로 된 우의와 모포를 깔고 4~5명이 끼어 잔다. 땡볕이 쬐는 낮에는 피할 데도 없다. 급수시설이 없어 빨래는 속옷과 양말 정도만 가능한 상태다. 이 때문에 수도군단 등 작전 부대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수도군단 정훈참모 김재을 중령은 "내 아들이 무사한지 궁금하다.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등의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병에겐 방패와 긴 자위봉, 안면보호 철망, 손보호 장갑이 지급돼 있었다. 군 당국은 시위대가 다시 몰려올 것에 대비한 공사를 하고 있다.

시위대가 접근하기 쉬운 대추리 쪽의 철조망 주위로 폭 3m, 깊이 1.7~2m의 호를 팠다. 호 안에는 철조망을 추가로 설치하고 바깥에는 다시 둑을 쌓았다. 시위대에 뚫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군당국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가 기다란 널빤지를 철조망에 올려놓고 넘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안성천 둔치에 설치된 군 지휘소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브리핑을 받았다. 평택 기지엔 처음이다.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김관진 3군사령관, 박 군단장 등 육군 수뇌부가 모였다.

그는 "불법.폭력시위로 국민의 세금과 국력이 낭비되고 있다"며 "(편의시설 건설 등을 위해) 예비비 100억원을 집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진정되면 최소한의 경계병력만 남겨놓고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라며 "공병부대를 동원해 논 바닥 성토작업을 해 숙영시설을 건설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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