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둥글다, 아니 네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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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콜럼버스는 화가 났다. "대서양 서쪽으로 자꾸 가면 누구나 새로운 섬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질투가 신대륙 발견 후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달걀을 집어들고 외쳤다. "누구든지 이 달걀을 세워 보십시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달걀 끝을 탁자에 톡톡 쳐서 껍질을 깨서 세웠다.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다.

우리나라에도'콜럼버스 달걀'이 나왔다. 가농바이오의 유재흥(51.사진) 사장이 만든 '네모난 계란'이다. 날달걀을 일일이 까서 살균한 알맹이만 네모난 팩에 담았으니 달걀을 세운 거나 진배없다.

"달걀도 편리함과 위생이란 관점에 보면 색다른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보건 전문가들은 "일부 위생처리가 덜 된 계란 껍질의 닭똥과 털, 먼지가 냉장고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달걀 껍질을 제대로 닦은 위생계란이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한다는 추산도 있다.

'네모난 계란'은 지난달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점과 무역센터점에 첫 선을 보였다. 신세계백화점.대구백화점 등에도 내놓을 방침이다. 할인점 출시도 타진하고 있다. 우선 서서히 소비자 반응을 보겠다는 생각이다.

유 사장의 '네모난 달걀'구상은 20년 넘게 지속됐다. 미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을 밟을 때 대형 수퍼마다 살균된 액상(液狀) 팩 포장 계란을 보고 '이런 것도 있구나'하고 놀랐다. 귀국 직후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그는 연구 끝에 10년 전 액상계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바로 일반 소비자를 공략하지 않았다. 학교 급식이나 케이터링 업체 공급에 주력했다. 그의 마음을 바꾸게 한 건 2003년 말부터 전세계를 뒤흔든 조류독감이다. "드디어 안전한 계란이 일반 소비자에게 먹힐 수 있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네모난 계란'이란 제품명은 동생의 친구가 붙여줬다. 팩이 네모 모양인 데서 따온 것이다. 유 사장은 '위생경영'을 늘 강조해 왔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공장은 엄격한 위생관리로 식품업계 사람들의 견학 장소로 유명해졌다.

사무실 안에서 슬리퍼를 신고 공장에 들어갈 때는 흰 가운에 마스크와 모자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손에 살균제도 뿌린다. 흡사 반도체 공장 같은 느낌이다. 가격은 고급 계란 값과 비슷하다. 계란 8개 분량인 400g 한 팩에 2500원. 다이어트 용으로 흰자만 따로 담은 팩도 있다. 위생적으로 안전하다는 것 이외에 ▶계란을 깨는 번거로움이 없고 ▶보관이 쉬우며 ▶사용 후 쓰레기 처리가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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