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녀가 콩닥콩닥 썸타는 테이블에 눈치없이 서빙하다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효찬의 서빙신공(4)

서버에게 중요한 기술은 화려한 언변이나 손님을 기쁘게 하는 마술 같은 것이 아니다. 맛집에 10년, 20년 오래된 단골손님이 생기는 이유는 늘 그 맛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집은 추억과 함께한다. 손님 입장에서도 오늘 오고, 또 몇 달 뒤 와도 서버의 에너지와 모습이 한결같다면 그만큼 가장 반가울 것이다.

만약 오늘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 서버가 다음번엔 울그락불그락 한다면 그 집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감정 기복, 서빙 기복이 있다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고객관리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관리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데에는 2가지가 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밸런스 유지해야 

서버는 오늘과 내일의 컨디션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사진 pixabay]

서버는 오늘과 내일의 컨디션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사진 pixabay]

가장 젊은 사람은 누구일까? 상식적으로 나이가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서버한테 가장 젊은 사람이란 오늘의 시작과 마감에서 가장 힘차게 인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어젯밤 불타는 금요일을 지새우고 다음 날 졸려 죽겠다는 듯이 건성으로 인사하는 스무살 청년과 어젯밤 푹 자고 또 컨디션이 좋아 힘차게 웃으며 시작하는 50대 아줌마 중 오늘의 젊은 사람은 단연코 50대 아줌마라고 할 수 있다.

서버는 오늘과 내일의 컨디션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밤을 지새운 몸으로 가게에 온다면 아무리 성격이 좋은 서버라 할지라도 동료의 행동과 손님 주문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몸은 쌩쌩하더라도 고민이 많고 정신적으로 피폐하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하고 꾸준함을 가져야 한다.

일전에 유명한 IT업계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내가 운영하는 족발집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근무 첫날 그에게 IT 쪽에만 있다가 요식업을 해보니 어떻냐고 물었다. 그는 “정말 좋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고 이렇게 몸만 써서 하루를 쓰는 게 정말 쉽고 단순한 것 같아요. 너무 재밌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표정으로 어렵게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체력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생각했다.

몸을 쓰는 사람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머리를 쓰는 소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관심이 가는 책을 읽거나 글을 써도 좋다. 또한 머리를 쓰는 사람은 짬을 내서라도 하루에 단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이라도 몸을 쓰는 행위, 즉 운동을 해야 한다.

집에서 만나는 가족, 회사에서 만나는 직장 상사와 동료, 가게에서 만나는 손님 등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를 만날 때 아무도 감정과 행동을 사전에 계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고 가정으로, 회사로, 식당으로 가는 것이다.

한쪽 테이블은 회식을 하고 있고, 다른 쪽 테이블에서는 한 직원이 상사에게 혼나고 있다. 또 어느 테이블에선 남자와 여자가 말싸움을 하고 있고, 또 어떤 테이블은 콩닥콩닥 썸을 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럴 때 서버가 아무 생각 없이 서빙을 한다면 눈치 없는 서버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단골에게 감정 기복 보이면 안 돼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말고 삭힐 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사진 pixabay]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말고 삭힐 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사진 pixabay]

우리는 고객관리가 우선이 아니라 자기관리, 자기의 감정을 가장 먼저 돌보고 케어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세상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말고 삭힐 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나는 외할머니 손에 컸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번 주가 고비라고 한다. 불러도 별 대답이 없고 손을 잡아도 움직이지 않는 할머니를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 옆에서 나는 더는 울지 않는다. 낮에는 사장으로 씩씩하게 일을 하며 밤에는 손주가 돼 꺼이꺼이 울며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정리하는 중이다.

며칠 전 강연을 하러 가다 엘리베이터에서 신영복 교수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소개하면서 서빙 신공 4장을 마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 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 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스타서버 이효찬 starserving@eunhafe.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