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못볼다이아몬드의 "명연"|프로야구 1세대 큰별 김봉연·박철순「현역」옷벗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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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2연승의 신화를 창조했던 OB 박철순과 홈런타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해태 김봉연이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투수와 타자로서 한국프로야구 개척기에 거성으로 우뚝섰던 이들 두 스타는 내년시즌부터 지도자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한국프로야구 1세대의 기수인 이들은 부상과 사고의 시련을 딛고 프로근성의 모범을 보여온 팬들의 우상.
선수시절의 화려한 영광이 지도자의 길에서 다시 재현될지 팬들의 기대가 크다.
『앞으로 1∼2년간은 선수생활을 더하고 싶었는데…』
구단으로부터 10일 코치승격통고를 받은 김봉연(36)은 『갑작스런 결정이라 착잡하다』며 『홈런타자의 명성을 살려 화끈한 타격야구의 조련사가 되겠다』고 말한다.
전주중앙국교 4학년때 야구를 시작한 김은 25년간의 선수생활중 아마와 프로를 통해 홈런타자의 대명사로서 한국야구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
그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부상한 1루수 김성한의 공백을 홀륭히 메우면서 해태 3연패(연패)에 수훈을 세웠고 이것이 그의 현역마지막경기가 됐다.
그는 82년 프로야구첫해에 22개로 홈런왕에 올랐고 86년에는 흠런(21) 타점(67) 장타율(0.514) 등 3관왕에 빛났으며 해태가 첫챔피언에 오른 83년에는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프로7년간 그가 날린 홈런은 1백10개에 타율은 2할7푼8리.
특히 그는 83년 교통사고를 당한후에도 불같은 투지를 보여 「노병은 살아있다」는 모범을 보였고 「철의 사나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이 붙었다.
김봉연의 「홈런인생」은 차라리 아마야구에서 더욱 화려했다. 연세대1학년때의 연고전에서는 투수로 츨전, 연고전사상 첫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웠고 대동아대전에서 3연타석 아치를 그려내는등 홈런하면 바로 김봉연을 떠올렸다.
72년 군산상에 「역전의 명수」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주역이기도 하다.
영원한 홈런타자 김봉연이 지도자로서 통쾌한 홈런인생을 장식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막상 마운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저 허전한 마음이 앞섭니다.』
82년 프로야구 원년에 경이의 22연승을 올린 박철순(32)은 『국내투수 최장수기록을 세우며 4O세까지 마운드를 지키려했는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두게되는게 제일 아쉽다』며 말끝을 흐렸다.
부산 동광국교6년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한지 20년. 부상과 재기를 다섯번이나 거듭하며 82년의 영광을 재현하기위해 불굴의 투혼을 팬들에게 보여준 그였다. 『포수 김경문과 함께 은퇴하기로 약속했는데 먼저 떠나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픕니다.』
천생연분의 배터리로 서로를 격려하며 값진 승리를 쌓았던 두 콤비는 이제 선수와 지로자로서 짝이 바꿔게 됐다.
박은 『유능한 코치가 된다고는 장담할수 없지만 선수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 믿음과 신뢰를 주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82년의 22연승보다 개인적으로는 승률 8할5푼7리를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86년5월 25일 잠실의 롯데전에서 김경문과 배터리를 이뤄 4-0 완봉승을 장식, 부상후 첫기록한 완봉승 경기를 잊지못한다』고 말한다.
박철순의 프로야구 7년은 원년의 화려한 영광뒤에 찾아온 부상과의 싸움으로 그를 아끼는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82년9월19일 대구의 삼성전에서 번트수비도중 당한 허리부상이 그의 야구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박철순은 80년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산하엘파소(마이너리그더블A)에서 2년간 활약하다 귀국, 82년 OB우승의 1등공신으로 원년 MVP에 빛났다. 그는 7년간 67게임에서 32승12패8세이브에 방어율 2·28의 기록을 남기고 20년간선수생활의 나래를 접었다. <조이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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