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욱 청문회TV중계의 득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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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5공비리특위의 일해청문회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인데다 텔리비전으로 생중계까지 되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새벽까지 진행되는 중계를 지켜보느라 잠을 설친 사람이 많았고, 장안의 화제도 온통 청문회 일색이었다.
정치현장이 국민들의 눈앞에 필쳐진 며칠새 새로운 정치스타로 떠오른 의원도 있고 밑천이 드러나 이제 국회의원은 다했다는 평을 들은 의원도 있을 지경이다.
의회의 청문회, 특히 조사청문회는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미국의 의회조사활동은 의원및 의원을 보좌하는 전문위원·보좌관·조사관등에 의한 철저한 전문조사를 기초로 한다.
청문회는 이러한 자체의 조사를 놓고 관련증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 균형을 맞추차는데 원래 제도의 취지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조사청문회는 사실발견이 목적이지 증인의 소견을 묻는건 외도라는 것이다. 개인의 소견이나 소신은 민주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양심의 자유법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해청문회 과정을 보면 이렇게 조사청문회활동의 기본인 의원들의 전문성·사실추구·증인의 증언기회부여란 여러 점에 모두 미흡한데가 많다.
우선 전문적인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한두명의 의원을 빼면 전문적인 준비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청문회가 주로 소위원회중심으로 열린다. 의원들이 상임위원회를 세분한 소위원회에 소속되어 자연히 그분야의 전문가가된다. 더구나 청문회를 갖기로 결정되면 보좌진을 동원, 철저한 준비를 선행한다. 그 조사자료에 입각해 냉정한 사실추궁이 가능하기때문에 공여한 허장성세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국회 국정조사기능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원들이 전문분야를 개발하도록 제도화 하고 전문보좌기구가 강화되어야 한다.
사법경찰권을 지닌 국회전문조사요원풀제, 필요시 행정부조사요원 차출제,전문요원일시고용제등 외국의 여러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이번 청문회에서 특히 눈에 거슬린건 신문하는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고 답변은 듣지도 않거나 아예 윽박질러 못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증언을 들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청문회(Hearings)제도의 취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한심한 행태가 아닐수 없다.
원내발언의 면책특권을 지닌 의원들이 근거가 희박한 일방적인 얘기를 해놓고 증인의 자구기회를 봉쇄하는건 인권유린이다.
이번 일해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되었기 때문에 이 제도의 강점과 약점이 증폭되어 국민들 눈에 비쳐졌다.
정치현장이 주권자인 국민들의 직접감시하에 놓인다는 점에서 의정의 방송중계는 민주주의 정치원리에 원칙적으로 부합한다. 또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제고시키고 국민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산교육장도 된다. 정치인늘이 국민의 눈을 항상 의식하게 돼 국민의식과 동떨어진 무리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의원들의 매명욕으로 인한 과잉행동의 우려도 크다. 개인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발언이 나올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도 보게 된다. TV에 오래 비쳐지기 위해 너도 나도 나와 쑬데없이 시간을 끄는 통에 의사처리의 비효율을 가져올 우려가 현실문제로 나타났다. 매체의 특성상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큰것도 문제다.
3년전 영국에 머무를때 하원의 TV보도 허용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영국의회는 여왕의 연설을 듣기 위해 상원에서 열리는 양원합동회의 외에는 일체의 생중계방송이 허용되지 않았다. 라디오로는 부분적으로 녹취방송이 가능해 의원들의 논쟁의 일부를 목소리로는 들을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회의 중심인 하원의 경우 TV화면을 통한 보도는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강식적 존재에 불과한 상원만 그 얼마전 TV보도의 금기가 깨어졌다.
그래서 TV를 보면 상원회의 광경 화면은 나오는데 하원은 화면이 아예 없거나 화가가 그린 그림이 나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바꿔 정치의 중심인 하원회의를 TV중계까지는 아니더라로 보도만은 허용하자는 논의가 제기됐던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방송사들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다.
논쟁의 중심은 의원들의 움직임이 시각적으로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 의원들에게 심리적 압력이 되어 무리한 행동을 낳을 우려가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상당기간 원내외에서 토론이 있은후 찬반당론없이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부쳐졌다. 그결과는 「노」였다. 영국하원의원들의 다수는 의회토의 과정에 대한 TV의 시각적 보도가 의정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한 판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뉴질랜드·인도등 수개국이 의회활동에 대한 TV보도를 금하고 있다.
반면 미국·프랑스·일본같은 나라는 TV생방송이 허용되어 있다. 서독·벨기에 처럼 생방송은 않고 편집해 방송하는 나라도 있다.
이렇게 TV중계문제에 우리가 꼭 존중할만한 선진 민주국가의 유력한 전범은 없다.
그러나 의회정치의 전통을 지닌 영국같은 나라에서 의회활동의 TV보도 금지를 왜 계속 고수하는지는 깊이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TV생중계까지 허용하는 우리의 지금 제도를 바꾸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생중계가 국민의 감정을 격발시키지 않도록 대상선별에 있어보다 사려깊은 신중함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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