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대통령과 여당 별개로 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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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한 최고위원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랍니다. 선거는 다가오고, 당 지지율은 안 오르고….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 그지없는데 밑바닥에서 꿈쩍 않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간다고 하니 이상한 모양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상하긴 해요. 2004년 4.15 총선 때는 '탄핵 역풍'으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율도 동반 상승했거든요.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수인 152석을 얻었지요. 그런데 올 들어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지지=여당 지지'라는 등식은 적용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픽 참조>

1월까지만 해도 20%대였던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달 말 40%까지 올랐는데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20%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별개"=열린우리당이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한 이유를 놓고는 같은 의견을 보여요. '골프 파문'이 불거진 이해찬 전 총리를 대통령이 경질하고, '돌출 언행'없이 여론을 수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3.30 부동산 대책같이 노무현 정부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정책을 밀어붙이자 20.30대나 대졸, 화이트칼라 등 예전의 전통적인 노무현 지지층이 돌아오고 있다는 거죠. 올 초부터의 경기 회복이나 주가 상승도 지지율 상승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해석도 있어요.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영 딴판입니다. 4월 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대통령 지지율은 41.4%였지만 여당 지지율은 27.8%로 대폭 떨어집니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여당을 찍지는 않는다는 흐름이 보입니다.

여당 내부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국민은 이제 청와대와 여당을 별개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동의한답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대권주자인 정동영 의장 체제의 여당은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의 당이 아니라는 의식이 퍼져가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과거 전두환 대통령 때도 노태우 대선 후보의 민정당이나, 노태우 대통령 때 김영삼 후보의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 때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은 대권주자가 등장한 뒤 청와대와 여당이 다르게 인식됐음을 보여주었지요.

◆ 대통령은 본인의 과거와, 여당은 한나라당과 비교돼=또 대통령과 여당은 비교의 대상이 달라요. 국민은 대통령을 고이즈미 일본 총리, 부시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노 대통령'과 '현재의 노 대통령'을 비교한다는 거예요.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은 "올 들어 경제회복 기조와 국정 안정감이 살아나며 국민이 '과거에 비해 특별히 나빠진 게 없다'고 느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해요.

하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비교하게 돼 있어요. 대통령에 대해선 과거와 비교되는 '현재의 안정감'으로 판단하지만, 여당은 다르다는 거지요.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여당의 '대표상품'인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최고위원 지지율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에 밀리면서 당의 지지율도 상승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요. 이탈했던 지지층을 되돌리기엔 여당 대권주자들의 동력이 아직 미흡하다는 의미죠.

◆ 통합론, 개헌론 꿈틀=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대통령 지지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선거를 앞둔 정당 선택은 근거와 명분이 있어야 바뀐다"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여당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주장해요.

여당 내부에선 어려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꿈틀거리고 있어요. 연대론과 개헌론이 그것입니다. 연대론은 열린우리당 바깥의 세력을 통합해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세를 만들자는 거지요. 이념적으론 여당 바깥의 진보.중도.개혁 세력을 끌어모으는 범민주 양심세력 통합론으로, 지역적으론 호남의 민주당이나 고건 전 총리와 연대하자는 얘기입니다. 서울의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우리 지역구만 봐도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전체 지지율보다 낮다"며 "여당과 민주당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헌론은 정치판을 새로 짜려는 시도죠. 현재의 대권 구도나 여야 구도는 '단임(單任) 대통령 중심제'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데 대통령 중임제나 내각제 등의 개헌론이 떠오를 경우 실제 개헌 여부에 관계없이 여야는 찬성과 반대 입장에 따라 크게 요동칠 수 있어요. 지방선거 후 정치권의 격변을 예고하는 대목이랍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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