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과학] 12만년前 날씨 빙하로 엿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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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12만년 된 빙하의 색은 무엇일까.갈색이다.

최근 유럽연합(EU) 연구팀이 그린랜드 빙원의 바닥인 3천84m 깊이에서 파낸 12만년 전 빙하는 높은 압력과 화학 작용으로 일반 얼음과는 달리 갈색을 띠고 있었다.

바닥까지 파내려가는 데만 7년여가 걸렸다. 이는 영하 섭씨 수십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싸운 결과다.이 빙하 덩어리는 1년 정도 일정으로 냉장고에 넣어 보관에 들어갔다. 지상의 압력 등 환경에 적응하게 만들어야 제대로 성분을 분석할 수 있어서다.

과학자들은 왜 빙하 시추와 씨름하는 것일까. 빙하는 지구 기후의 격변을 일으킨 사건인 빙하기의 전조를 비롯한 고대 기후의 비밀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빙하는 나무가 나이를 먹을 때 나이테를 남기듯 매년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때로는 두껍거나 얇게, 때로는 바다에 많이 있는 염분 함량이 매년 다르게 나타나는 등 켜켜이 쌓인 빙하는 그해 그해 지구 기후의 이력서를 써온 것이다.

과학자들은 고대 기후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지구 환경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고, 생물의 멸종.진화의 단초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파올린 빙하 덩어리는 마지막 거대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 지구가 따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2만~11만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빙하기의 전후 등 그 전모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 당시 살았던 미생물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빙하에 포함된 무거운 산소동위원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해의 온도가 높았다는 등 온도 변화 정도를 알 수 있고, 미세한 공기방울은 그 당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등 가스 종류를, 먼지는 대기에 포함된 물질의 양을 알 수 있게 한다. 암모니움이 많이 석여 있으면 저위도로부터 대기가 다량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린랜드 빙원에서 1천~3천m 깊이까지 빙핵을 채취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그러나 앞서 두번에 걸쳐 파올린 빙핵에서는 마지막 거대 빙하기(11만~1만1천여년 전)가 시작되기 직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하나에서는 기후변화가 서서히, 또 다른 하나에서는 급격하게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린랜드 빙하 연구팀은 세번의 시추를 해 오면서 지구 기후가 4만년과 2만3천년, 1만1천1백년, 6천1백년 등 다양한 주기로 변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4만1천년과 2만3천년 주기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수학자인 밀류신 밀랑코비치가 주장한 것이다.

4만년 주기설의 경우 지구 자전축이 약 4만년을 주기로 21.5~24.5°(현재는 23.5°)에서 움직이는데 이때 경사가 최대가 되면 빙하기, 최소 때는 간빙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들 주기는 해양 퇴적물에서도 나타났으며, 이를 더욱 정확하게 입증한 것이다. 현대 과학은 이보다 더 짧은 다양한 주기의 기후 변화도 판독이 가능하다.

빙하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정확한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1천7백86m의 빙하 샘플에서는 마지막 빙하가 막바지에 도달한 1만1천5백년 전에는 1백년 만에 지구 기온이 섭씨 15도나 급격하게 올라간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공기수 연구원은 "빙하 시추는 이런 각종 기후 주기설의 가부를 입증하는 것을 비롯, 고대 기후 변화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료"라며 빙하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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