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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 그런데도 곁에 있는 듯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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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6일 호평 속에 종영한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박서준(왼쪽)은 연기의 폭을 한 단계 넓히고, 박민영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사진 tvN]

지난달 26일 호평 속에 종영한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박서준(왼쪽)은 연기의 폭을 한 단계 넓히고, 박민영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사진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두 사람이 그려나가는 사랑 이야기다. 이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분명한 드라마지만, 또 그만큼 서사가 빈약한 드라마란 소리기도 하다. 둘만의 사랑이 아무리 ‘꽁냥 꽁냥’ 한들 그것만으로는 16부작 드라마를 이끌어갈 순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힘든 걸 이 드라마가 해냈다.

드라마 ‘김비서가 …’ 이끈 두 주역 #로맨틱 코미디 귀재 입증 박서준 #“비현실적 캐릭터지만 밉지 않게” #4㎏ 빼고 옷도 직접 만든 박민영 #상대방 허세 끊어내며 중심 잡아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호평 속에 지난달 26일 막을 내렸다. 최고 시청률 8.6%(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화제성·시청률을 동시에 잡았다. 비결이 뭘까. 그 중심에는 현실 속에서 볼 수 없는 작위적 캐릭터를 거부감 없이 소화한 두 배우, 박서준(30)과 박민영(32)이 있었다.

종영 후 만난 박서준은 “캐릭터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됐다”며 “연기할 때 자연스러운 걸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라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박서준은 ‘지구는 자신을 위해 돌아간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 부회장 이영준을 연기했다. ‘기승전-자신’으로 귀결되는 낯 뜨거운 자기 사랑과 허세 가득한 몸짓, “눈부시지 않나 나한테서 나오는 아우라”와 같은 민망한 대사로 똘똘 뭉친 캐릭터다.

박서준은 “스스로 자기 평가가 엄한 편이고 또 그게 제 연기의 뿌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역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을 하는 것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밉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함께 연기한 박민영도 박서준이 어떻게 ‘이영준’을 표현할지 궁금했다고 한다. 박민영은 “예를 들어 웹툰 속에서 영준이가 웃으며 꽃이 날리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냐”며 “너무 궁금해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그걸 박서준은 하더라. 너무 느끼한 대사를 담백하게 해버리니까 나도 모르게 설득됐다”고 말했다.

양 ‘박’의 호흡은 드라마를 더욱 빛냈다. 박서준은 박민영과의 호흡에 대해 “연기는 액션보다 리액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비호감으로 비치기 쉬운 캐릭터 이영준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자리 잡는 데는 ‘김미소’를 연기한 박민영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다. ‘김미소’는 9년 동안 대기업 후계자 이영준 밑에서 비서로 일하다 자아를 찾기 위해 돌연 사표를 던진다. 영준의 허세를 적절하게 끊어내며 그의 까다로운 요구 또한 훌륭히 소화해내는 능력자다.

영준은 항상 옆에 있던 미소의 부재가 현실로 다가오자 비로소 미소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깨닫는다. 박민영은 “처음 역을 제안받았을 때 ‘이제는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대사가 와 닿았다”며 “부회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다 잡는 모습이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민영은 김미소라는 완벽한 캐릭터를 연기하려 체중을 4㎏ 감량하고, 만화를 찢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싱크로율’을 만들려 애썼다. 구하기 힘든 만화 속 의상을 만들고 헤어 메이크업을 구현했다. 박민영은 “처음에 제가 캐스팅됐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던 게 사실”이라며 “웹툰 속 김미소를 보면서 외부 연락도 거의 안 되는 상태에서 운동하며 스스로를 다 잡았다”고 말했다.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한 이후 ‘성균관 스캔들’(2010) ‘시티헌터’(2011) ‘힐러’(2014) 등 숱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톱 배우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한 박민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사실상의 첫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해 곧장 ‘로코 여신’이 됐다. 박민영은 “첫 방송 이후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마스크팩 붙이고 덜덜덜 떨면서 반응을 확인했는데,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며 “한 번은 야외 촬영장에서 동네 할머님이 ‘김미소 잘하고 있어’하고 소리치셔서 ‘다양한 연령대에서 미소를 좋아해 주시는구나’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준화 감독님은 걸그룹보다 날씬하게 살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짜깁기된 열애설이 터지면서 너무나 죄스럽다”고 말했다.

박서준은 지난해 KBS ‘쌈, 마이웨이’에서 짠 내 나지만 꿈을 향해 시원하게 내지르는 청춘 ‘고동만’역을 통해서도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후 tvN 예능 ‘윤식당2’, 영화 ‘청년경찰’ 등에서 ‘동네 아는 형·오빠’ 같은 매력을 뽐낸 박서준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대세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현실에 발을 디딘 자연스러운 연기 틀을 벗어나 ‘김비서’에서 과한 설정의 캐릭터까지 소화하며 연기의 폭을 한층 넓혔다. ‘김비서’ 드라마 제작사인 본팩토리 오광희 대표는 “웹툰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박서준을 캐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떤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해도 자신만의 멜로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다”라고 말했다.

다만 첫 주연작이었던 tvN ‘마녀의 연애’(2014)에 이어 MBC ‘킬미, 힐미’ ‘그녀는 예뻤다’(2015) ‘쌈, 마이웨이’(2017) 등 흥행했던 드라마가 주로 로맨틱 코미디다 보니 ‘로코용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서준은 “로코 장르에서 제가 부각된 게 사실이라 그런 이미지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영화 ‘악의 연대기’ ‘청년경찰’ 등 다른 장르들도 해왔고 앞으로도 해갈 것”이라며 “그런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서준은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어떤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저 작품을 통해 보여질 뿐이죠.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맞닥뜨릴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든 자신이 없진 않습니다. 그런 역할이 주어졌을 때 ‘박서준’이란 애가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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