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 인생에도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묻던 젊은이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33)

신혼 초에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사진 pixabay]

신혼 초에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사진 pixabay]

신혼 초에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은 사채꾼들의 등쌀에 못 이겨 먼저 떠나고 일 년 후 나도 시댁을 떠나게 됐다.

사업을 하면서 은행은 물론 개인 사채까지 이리저리 많이 빌려 쓴지라 시달리다 못해 시부모가 나도 남편에게로 떠나라고 했다.

남편이 먼저 가서 정착한 곳은 광산이 있는 태백이었다. 야반도주하듯 간 이사는 아니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같이 울어 주었다.

신혼 초 6년을 사채업자에 시달려

화물칸에 이삿짐을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며 아이를 등에 업고 6시간을 달렸다.[사진 pixabay]

화물칸에 이삿짐을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며 아이를 등에 업고 6시간을 달렸다.[사진 pixabay]

시집올 때 해온 장롱까지 싣고 동네 아저씨의 경운기로 경산역에 가서 화물칸에 이삿짐을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며 아이를 등에 업고 6시간을 달렸다. 아침에 출발한 기차는 오후 해거름에 태백에 도착했다.

다시 짐을 내리고 올리는 일을 하면서도 별로 힘든 줄 몰랐던 것은 기다리는 남편과 등에 업힌 아이가 있어서였다. 그땐 든든한 남편만 있으면 헤쳐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망해도 신혼 때 망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짐차를 빌려 얻어 놓은 집에 가니 힘들게 가져간 장롱이 천장이 낮아서 못 들어갔다. 장롱을 마당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개집 같은 그곳에서 며칠을 자고 나니 사채업자들이 찾아왔다.

노인들을 얼마나 닦달했는지 부모님이 주소를 알려주었던 모양이었다. 졸지에 주인은 객이 되고 그 사람들이 돈 내어놓으라고 며칠을 큰대자로 누워 뻗댔다.

당시 월급이 25만원 정도였는데 매달 각각 3만원씩을 갚아 나가겠다 사정하니 3명의 사채업자가 동의하고 철수했다. 그때 남편은 배 째라는 식으로 부딪쳐 싸웠지만 나는 싹싹 빌며 선처를 구했는데 그 시절 배운 게 있다.

두 사람 다 나빠도 살기 힘들고 두 사람 다 착해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렇게 남편은 나쁜 사람 역할을 하고 나는 착한 사람 역을 하며 그 무서운 세월을 이겨나갔다.

그리고 마음이 착한 사채업자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사채업자 한 사람은 떠날 때 쌀 한 포대를 슬그머니 넣어 주고 돌아갔다.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살다 보니 날마다 힘든 인생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6년을 빚을 갚으며 살았는데 중간중간 사채업자들이 친척 집 오듯 드나들었다.

바닥을 한번 쳐보는 것이 나쁘지 않은 '씨앗' 될 수도

힘든 시간도 잘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인 것 같다.[사진 pixabay]

힘든 시간도 잘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인 것 같다.[사진 pixabay]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사건이다. 엄청 힘들었던 그 시간도 엄청 행복했던 시간도 파도타기 하듯 오간다는 것을 알았다. 잘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인 것 같다. 살면서 바닥을 한번 쳐 보는 것도 희망이 있는 한 나쁘지 않은 씨앗이 될 것이다. 단 젊을 때만.

요즘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농경사회 산업화사회를 살아온 우리보다 엄청 힘들고 어려운 사회에서 사는 거라고 말씀하신 어른의 말씀이 생각난다. 살아보니 옛 어른들이 늘 하시던 말씀 중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젊은이들이 엄청 힘든 이 고비를 열정을 다해 잘 이겨만 낸다면 노후에 행복을 저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개소리한다고 하겠지만 꼰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이 말은 하고 싶다.

달리고 넘어지고 또 달리며 산 60년도 이렇게 긴데 100세까지 살아가자면 얼마나 긴가? 그래도 살아보니 온갖 경험이 큰 재산으로 노후를 지켜주는 것 같다.

그러니 젊음은 철인 3종경기라 여기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넘어지고 부딪치며 달려주기를 바라본다. 쉬는 날 개업한 식당에서 젊은 청년과 함께 땀을 흠뻑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서 이 글을 쓴다.

식당에 취업한 젊은 아르바이트생과 대화 중 “저의 인생에도 희망이 있을까요?”에 대한 단상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