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장수면과 KF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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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젊은이들의 성(姓)이 '중(中)'이냐, '시(西)'냐."

3월 열렸던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중국의 국회) 기간 중 약 3000명의 대표(의원) 중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국 전통 음식인 장수면(長壽麵)을 외면하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과 맥도널드를 먹으면서 코카콜라를 마시고, 해리 포터를 보면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중국인이냐, 서양인이냐는 지적이었다.

한 대표는 "중화 문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선 그냥 있어선 안 된다. 나라 예산이라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다른 대표는 "서양 문화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주장도 폈다.

중국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꿈틀대더니 점점 확산돼 가는 추세다. 3년 전 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한 뒤 그런 바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30년 가까운 개혁.개방정책이 가져온 후유증을 다스린다는 명분이다. 무엇보다 외국 자본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전엔 황제 같이 대접했지만 지금은 견제하는 분위기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다민족 연합체지만 한족(漢族)우월주의가 엄연히 존재한다. 한족 문화의 정통이라며 황제(黃帝)를 모시는 행사가 대표적인 예다. 2년여 전 황제의 묘역에서 공산당 간부가 참석한 첫 공식 제사가 거행된 후 매년 행사 규모가 커지고 있다. 허난(河南)성 소림사(少林寺)는 올 3월 선전(深?)TV와 손잡고 '쿵후 스타 세계 챔피언대회'를 개최했다. 전통 무예인 쿵후를 지구촌으로 확산한다는 명분에서다. 관계 당국은 미국 휴스턴 등 세계 30개 도시에 공자(孔子)학원을 설립할 준비로 부산하다. 중국 문화부는 최근 자국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관한 심의기준을 대폭 낮추기도 했다. 서방에 맞서 자국 영화를 양산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일부 지식층은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민족주의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고 있다. 개방파가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그 자리는 보수적 애국주의로 채워지는 분위기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